지난 26일 밤, 우리 대학 대강당을 뜨겁게 달군 ‘소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멋진 보컬의 간드러진 목소리? 락 밴드의 열광적인 무대? 힙합? 모두 아니다. 다소 생소하지만 삶 속에 녹아있기도 한 ‘진도 씻김굿’이다. 마음 속 찌든 때와 해묵은 감정 모두를 ‘씻겨 줄’것 같은 그 이름, 진도 씻김굿. 진도 씻김굿은 무당이 하는 제사 중 하나로, 이승에서 풀지 못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고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며, 원한을 씻어준다 해서 ‘씻김굿’이라 부른다.

25년 만에 우리 대학 찾은 진도 씻김굿
지난 26일 우리 대학 개교 55주년 기념으로 진도 씻김굿 공연이 열렸다. 이 날 무대에는 무형문화재 박병천 씨, 박병원 씨를 비롯해 모두 10명의 씻김굿 전수자들이 공연을 했다.
 

9대째 진도 씻김굿을 계승해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박병천 씨는 우리 대학에 지난 83년 이후로 첫 방문이다. 박병천 씨는 “학교 건물이나 다른 것들은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그대로인듯 하지만 학생들이나 학교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지난 83년에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박 씨는 전통 음악을 멀리하고 빠르고 즉흥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세태에 대해 “시대는 변하고,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취향은 다르다. 다만 요즘 사람들이 ‘우리 음악, 우리 문화가 없어지면 국적이 없어진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용서와 화해, 위안의 ‘축제’
구수하면서 애절한 목소리와 구슬픈 울음소리 같은 아쟁, 강하면서도 잔잔한 소리의 징, 한을 담은 목소리를 닮은 피리 소리 등이 어우러져 ‘씻김굿’이 시작됐다.
 

우리 대학에 터 잡은 조상들의 혼을 불러내는 소리, 조상들의 한을 풀어주고, 한편으로는 공연을 보기위해 자리한 사람들을 위안하고 앞으로 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소리로 이어졌다.
 

목으로 하는 소리를 뛰어 넘어 마음으로 하는 소리였다. 죽은 자를 위한 굿판이 결코 슬프거나 통곡하는 ‘눈물의 굿판’이 아니고,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과정을 통해 산 자들을 위로하는 ‘축제의 굿판’이라는 내용과 들어맞아서일까. 이때부터 혼과 소리가 공존하는 무대는 마치 이청준의 소설 ‘축제’를 생각나게 했다.
 

씻김굿을 보러 온 관객 중 일부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무대 위에 차려진 제사상 앞에 가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죽은 자에 대한 위로이자 ‘앞으로 무사히 인생을 마치게 해주시옵소서’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이렇게 씻김굿은 죽은 자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거나 회한을 푸는 과정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죽은 자는 여한 없이 떠나고, 산 사람도 미련 없이 보낸다. 그래서 씻김굿은 ‘죽은 자만을 위한 굿’은 아니다.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굿’이다.
 

이 날은 다가올 5월의 영령들을 위한 소리도 하고 우리 대학의 개교 55주년과 통합 1주년을 기념한 굿도 함께 했다. 박병천 씨는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여수대와 전남대 사이에 풀지 못한 것들을 진심으로 씻김 받고, 전남대학교가 앞으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가 되길 바란다”며 ‘길닦음’을 마지막 굿으로 공연을 마쳤다.

 
소리로, 마음으로, 죽은 자와 산 자 불러내…
이 날 공연을 찾은 관객들은 진도 씻김굿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지만 가장 크게는 마음으로 듣고, 보고, 느꼈다.
 

우리 대학 농생대 풍물패 회장인 곽태환 군(동자·2)은 평소에 풍물을 쳐 관심이 많았지만 진도 씻김굿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곽 군은 “가락만 살려 치는 게 아니라 느낌과 혼을 살려 소리를 해서 마음을 울렸다”고 말했다. 또 씻김굿을 보기 위해 우리 대학을 찾은 조아현 씨는 “서양 음악은 서양 음악대로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 음악은 우리 음악대로 아름답다”며 “특히 춤사위나 의상이 멋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김소현 씨는 “공연 중간 중간 해설이 있어서 받아들이기 더 쉽긴 했지만 1시간 반이라는 공연시간이 정해져 있어 더 많은 것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 관객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과 막걸리를 함께 나눠 먹고, 공연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등 굿판이 벌어진 시골집 앞마당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씻김굿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병천 씨는 “그야말로 전남대학교 안에 남아있는 우리 문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축제의 장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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