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의 박효종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교과서포럼이란 단체에서 <한국근현대사대안교과서> 시안을 발표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 단체는 이른바 뉴 라이트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모양인데, 이번에 발표했다는 교과서의 시안에 따르면 5·16은 혁명이고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을 위해 큰 공을 세웠고, 유신체제는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였으며, 5·18은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광주시민들의 원한감정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두환 정권은 발전국가를 계승했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한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의 박효종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교과서포럼이란 단체에서 <한국근현대사대안교과서> 시안을 발표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 단체는 이른바 뉴 라이트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모양인데, 이번에 발표했다는 교과서의 시안에 따르면 5·16은 혁명이고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을 위해 큰 공을 세웠고, 유신체제는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였으며, 5·18은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광주시민들의 원한감정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두환 정권은 발전국가를 계승했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한다.

아침에 그 보도를 접한 날 저녁에 나는 얼마 전 전남대학에 다녀간 서경식 선생으로부터 그 분의 새 책을 선사받았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책이었다. 레비는 이탈리아 태생의 화학자였다. 파시즘이 창궐하자 그는 유태인으로 분류되었다. 빨치산이 되어 싸우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으나 곧 포로가 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다행히 그는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수용소의 참상을 안으로 성찰하고 밖으로 증언하였다. 그리고 1987년 자살했다.

서경식 선생의 책은 그 쁘리모 레비의 무덤을 찾아가는 일종의 기행문이다. 그 여행길을 따라가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레비의 삶을 지배했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죄 없는 약자 또는 소수자들에게 가하는 상상을 초월한 폭력이 야기하는 고통이다. 지은이는 레비의 고통을 또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병치시키면서 그런 종류의 폭력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한 사람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인의 고통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남의 고통을 바라보더라도 고작해야 멀리 비켜서서 보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에게 자꾸 타인의 고통을 가까이서 똑바로 보도록 강요한다.

그가 보여주는 폭력과 고통의 풍경들 가운데는 우리의 현대사와 얽힌 것들도 많은데, 이를테면 그의 친형인 서승이 1971년 간첩혐의로 붙잡혀 보안사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불라고 고문을 받던 중 수사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난로를 껴안고 분신을 기도하여 상반신과 얼굴이 타버린 일이라든지, 73년부터 74년에 걸쳐 비전향 사상범을 전향시키기 위해 흉악범들이 두세 명씩 있는 감방에 사상범을 한 사람씩 집어넣어 온갖 방식으로 구타하고 고문을 가하여 더러는 죽고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

그런 시대를 두고 교과서포럼에서는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였다고 평가했다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의한 권력의 폭력 앞에 고통 받고 희생당한 것을 우리가 잊어버리게 되면, 역사는 숫자로만 남게 된다. 일제 식민지 지배 아래서도 경제가 발전했고 박정희의 독재정권 아래서도 경제는 발전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경우에도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군위안부와 인혁당 희생자들 그리고 망월동에 잠든 원혼들의 고통을 잊는다면 남는 것은 학자들이 그래프로 그려 보이는 숫자뿐이다. 그리고 그래프 너머 약자들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된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제시되는 이러저런 성과가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바로 그 희생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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