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로 이제 막 여상을 졸업한 소녀들을 감싸 안았던 정재은 감독은 ‘태풍태양’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거리를 질주하는 청춘들의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 

‘고양이를 부탁해’로 이제 막 여상을 졸업한 소녀들을 감싸 안았던 정재은 감독은 ‘태풍태양’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거리를 질주하는 청춘들의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니까 정재은은 연달아서 청년기 초반의 친구들에게 애정이 많은 것이다.

속도를 낼 수 있는 바퀴신발을 신고 묘기까지 펼칠 수 있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은 스피드와 스릴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육체의 해방감을 만끽하려는 친구들에겐 매력적일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라인 스케이트에 두발을 담고 도로는 물론이고 계단과 난간, 공원과 빌딩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이때, 재미없는 고교생활에 무료한 소요(천정명)가 게릴라처럼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 일행에 합류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요는 모기(김강우)와 갑바(이천희)라는 서로 대립되는 형들을 만난다.

먼저 갑바가 있다. 갑바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을 재미로 타지 않는다. 그에게는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으며, 후배들에게 그 고지를 점령하자는 꿈을 심어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기가 있다. 모기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을 재미로 탄다. 그는 그들 중에서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지만 돈과 명예의 시스템 안에 포섭되기를 거부한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걸로 끝내자는 주의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온다. 세계대회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어그레시브를 활용한 광고 아르바이트를 찍는 도중에 갑바의 대타였던 모기가 고의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모기 내면의 육체화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갑바는 사고 뒷수습을 위해 후배들을 다독거려 팀을 구하기 위한 이벤트에 뛰어 들지만 모기는 이벤트조차 거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모기는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족쇄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로 인해 어그레시브 인라인의 유희성은 휘발되고 목적성만 남게 되는 상황이 모기는 싫은가 보다.

그러나 모기의 생각을 세상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의 질서는 끊임없이 ‘아들의 놀이’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법’을 강요한다. 모기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대신 그에게는 자기파멸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모기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는 감독 정재은은 그를 도심속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안착시킨다. 그런데 이 설정에는 묘한 정서적 울림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장면에는 문명에서 야생으로 회귀하는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소외와 상처는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모기는 그 관계 맺기를 중단해 버린 셈이다.

조대영(광주전남미디어행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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