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갑.그와 내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스물여섯에 맞이하는 가을의 캠퍼스. 아침저녁에는 제법 쌀쌀한 겨울이, 한낮에는 제법 무더운 여름이 술래를 잡는다. 그렇게 가을은 잡히지 않는, 그러나 제법인 계절이다. 하늘도 제법 높은 오늘, 그와 동갑이 되어 다시 그를 생각한다. 멀리서 그가 제법이구나 생각할지 모르겠다.  

다시, 김신.

1. 동갑.

그와 내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스물여섯에 맞이하는 가을의 캠퍼스. 아침저녁에는 제법 쌀쌀한 겨울이, 한낮에는 제법 무더운 여름이 술래를 잡는다. 그렇게 가을은 잡히지 않는, 그러나 제법인 계절이다. 하늘도 제법 높은 오늘, 그와 동갑이 되어 다시 그를 생각한다. 멀리서 그가 제법이구나 생각할지 모르겠다. 기억하려 애써보자. 그의 강인한 턱, 선한 웃음은 이제 이미지다. 그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 이미지는 점점 흐릿해져 그의 실제에서 점점 벗어날 것이다. 그는 그렇게 그에게서 멀어져 가지만 지워지지는 않는 존재이다. 이제 내가 그가 새긴 이승의 마지막 나이테를 밟고 있으니, 흐릿해져가는 그의 이미지의 정중앙에 선 것만 같다. 그와 나는, 갑이다.


2. 김신.

신이라는 사람을 알고 지낸 것은 아주 짧은 기간이다. 후다닥 지나쳤던 나의 숱한 학기 중에 달랑 하나, 그것이 전부다. 그는 만 가지 꿈 중에 천 가지 정도를 간직하고 입학한 대학교에서 본 예비역 중에 하나였다. 그는 김신이라는 다소 시적인 이름을 가진, 그러나 시적으로 생기지는 않은 육 년 선배였다. 그와 몇 번의 술을 마시고 인사를 하고 농을 친 후 여름이 왔다. 기말고사는 잘 보았냐 나는 통일이 될 거 같아 시험을 볼 수가 없던디. 남북정상회담을 하던 유월의 어느 날 예비역답지 않은 순박한 웃음에 단풍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 단풍이 들듯 가을이 왔고 그 가을에 그는 없었다.


3. 우연.

그는 타고난 시인은 아니었으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아름다운 것은 왜 그리 빨리 져버리는지. 지금은 말끔해진 인문대 1호관에서 그는 어두침침한 복도와 어울리는 피부색을 하고서 촌스러운 남방 안에 아무렇게나 생긴 티를 입고 어슬렁거렸다. 그의 옆구리에서 반짝이던 낡은 시집들이 그의 인사에 따라 허공에서 흔들리곤 했다. 아야, 까치야 조심해라야. 빨간 벽돌 끝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까치를 보며 그는 인벤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아야, 잘 지내라야. 시처럼 사람을 사랑하던 그가 이제 온 까치 같은 새내기 둘을 데리고 월출산에 마실가며 그렁저렁 웃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그리고 그곳의 저수지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소녀를 본 것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깊은 저수지에 뛰어든 것도 그리고 뻣뻣한 육신으로 나온 것도 모두, 우연은 아니었다. 우연이라면 그것은 너무 화나는 일이니까. 너무 억울하니까.


4. 2006.

시를 쓰며 권투선수가 되고 싶다고 쑥스러워하던 그의 마지막을 보려 인문대 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한 여름의 햇살이 미간을 주름잡게 하던 날의 학생장(學生葬). 그때에 영정 사진 뒤에서 나부끼던 깃발들을 기억한다. 그 날의 노래와 그 날의 헌시와 그 날의 마지막 여름을 기억한다. 그리고 2006년이 되었다. 그가 겪을 수 없었던 스물여섯의 캠퍼스에 서있다. 이곳에는 더 이상 깃발이 없다. 손을 흔들며 잇몸을 보여주며 인사할 후배와 선배는 흐릿하게 지워져 언젠가 이미지로만 남을 것만 같다. 공무원과 편입에 대한 시험 준비를 독촉하는 전단지가 의식과 사명감을 나르던 인쇄물을 대신한다. 그렇게 우리는 학원을 다니고 수업을 듣고 가을을 걷는다. 우연이라면, 화나는 일이다. 우연일까. 핵실험을 할까봐 기말고사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살고 있다.


5. 다시, 김신.

영암에서 태어나 94년 이곳에 와 2000년 7월 30일 다시 영암으로 그는 갔다. “아름다운 것은 왜 빨리 가는지” 노래하던 그. 너무나 빠르게 가버린 그를 다시 생각한다.  그의 실제에서 한없이 미끄러지며 그를 생각한다. 이제 그는 없다. 그의 생전에 그리고 얼마 전 까지 ‘비나리 동산’으로 불리던 작은 언덕에 갔다. 맑은 하늘아래 배롱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배롱나무는 실제의 김신이 아니나 김신처럼 처량하고 맑은 영혼으로 바람을 맞으며 살아있다.

그가 죽고 6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사람도 변하고 시도 변했다. 그러나 당신도 나도 살아있다는 것, 언제고 변치 않으리라. “바람은 씨앗 휘날리는 생명”이고, 생명은 바람을 따라서 기어코 다시, 인사를 건넬 것이니. 다시, 김신을 생각한다.


서효인 (국문·석사과정)


김  신......


▶1976년 전남 영암 출생

▶1994년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1996년 국어국문학과 시창작연구회 ‘비나리’ 회장

▶1999년 군 전역

▶2000년 국어국문학과 부회장

▶같은해 7월 30일 월출산 저수지에서 물에

   빠진 여중생을 구하고 본인은 숨을 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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