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4시 30분 어둠을 뚫고 배낭을 맨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대학 대강당 앞으로 모였다. 이들은 모두 새벽 5시에 북으로 떠날 금강산 모꼬지단. 나는 이 6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약 6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남측 출입국사무소(CIQ)로 향했다.  

 

 

 

 

 

 

 

 

 

 

 

9일 새벽 4시 30분 어둠을 뚫고 배낭을 맨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대학 대강당 앞으로 모였다. 이들은 모두 새벽 5시에 북으로 떠날 금강산 모꼬지단. 나는 이 6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약 6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남측 출입국사무소(CIQ)로 향했다.

도착 후 안내 요원에게서 신분확인 후 금강산 관광증을 전해 받고 북에 가지고 갈 수 없는 물품들을 재차 확인했다. 버스는 출발하여 곧장 비무장 지대를 거치게 되었다. 오른쪽 창가로는 누구도 손대지 않은 파란 동해 바다가 기대에 부푼 우리의 마음처럼 출렁이고 있었고 해변가에는 철조망이 연속되어 길게 뻗어 있었다.

비무장 지대를 지나던 중 버스는 남과 북의 최종 경계선인 군사분계선을 볼 수 있게 아주 느린 속도를 유지했다. “지금 남과 북을 나누고 있는 군사분계선이 어떻게 생긴지 아느냐”는 안내원의 질문에 차량 속 학생들은 대다수 철조망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허리 정도 밖에 오지 않은 크기의 다 낡은 콘크리트 사각기둥 1천2백여 개가 전부”라는 안내원의 말에 모두들 놀라 그 조그마한 콘크리트 기둥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남과 북은 말뚝 하나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어진 안내원의 “그럼 우리는 이 말뚝을 보고 통일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말뚝 그냥 뽑아버려요”라는 한 학생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도 가슴한쪽 뭔가 무거운 고민이 들었다. 말뚝을 지나 1백여 미터에 한명씩 서있는 북측 군인을 보고서야 이제 진짜 북한 땅에 들어섬을 실감했다. 학생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북측 군인을 보고 “우아”하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곧 북측 CIQ에 도착했고 창문으로만 봤던 북측 군인의 매서운 감시 속에 세관을 통과 했다.

버스에서 “북측군인에게 손가락 총질(손가락질)하거나 웃지 말라”는 당부에 모두들 긴장된 모습이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향하는 중 온천이 유명한 온정리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창밖으로는 밭에서 무를 수확중인 주민들의 모습과 경운기, 교복입고 자전거 타는 학생들, 담장너머로 보이는 농구대, 물가에서 고기 잡는 부자의 모습이 남측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었고 얼마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북핵 문제가 생소할 정도로 평온했다. 군사지역이어서 사진 촬영이 불가한 우리를 감시 하려는 차가운 눈빛의 군인들과 언덕 곳곳에 자리잡은 탱크의 모습만이 이곳이 북한임을 느끼게 했다.

도착 직후 모두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 관람을 끝으로 금강산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집결하여 본격적인 등산길에 나섰다. 이번 등산코스는 구룡폭포와 상팔담으로 왕복 약 16km에 달하는 코스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구룡폭포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물줄기와 구룡대 아래로 보이는 여덟 개의 연못이 이어진 상팔담은 마치 옥구슬이 꿰어있는 마냥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목란관에서 먹은 산채비빔밥과 냉면은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우리 지역의 음식과는 다른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목란관은 북측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모두 북측 여종업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남남북녀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두 예뻤다. “여기는 모두 얼굴로 뽑느냐”는 질문에 한 종업원이 “그렇지 않슴다”라며 “출신 고등학교와 이름 그리고 사는 곳을 보고 배정된다”고 말했다. “선생님네 학비는 얼마나 됩니까”라는 북측 종업원의 질문에 “백 육십만원 정도 한다”고 말하자 종업원은 입을 벌리며 놀랬다. 그는 “저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 할 액수 임다”라며 우리에게 “선생님들은 부모님께 효도해야 겠슴다”라고 당부했다.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많은 학생들이 북측 안내원 혹은 종업원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북핵 어떻게 생각 하느냐”먼저 묻기도


한 학생은 북측 안내원이 먼저 “북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질문을 건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등반 이후에는 노천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고 이어진 조별 장기자랑과 술자리로 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지막 날 아침 다시 우리는 전날과 같은 시각에 수정봉 등산길에 올랐다. 원래는 만물상 코스를 등산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몇 일전 온 비로 길이 유실되어 계획이 변경되었다. 전 날에 비해 다소 힘들지 않은 코스였고 수정봉 정상에서 보이는 장전항은 막혀있는 가슴을 활짝 열어 주었다.

정상에서는 흡연자들에게 담배 한개피를 피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흡연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맛을 선사했다. 수정봉 정상에 오른 느낌을 묻는 질문에 이번 모꼬지 단장 강혁 군(응화·4)은 “말이 필요없다”며 “봐보세요”라고 거듭 말했다.

수정봉 등반을 마치고 삼일포에 들러 호수의 아름다움을 맛본 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복잡한 세관검사를 거쳐 남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2박 3일 내내 숙소에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시청했고 버스에서 남측 라디오를 들으며 이동했다. 북측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우리나라 돈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남과 북을 가르고 있는 것은 말뚝만이 아닐까.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의 민족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이번 모꼬지에 참가했던 우리 대학 60여 명의 학생들은 통일의 염원과 금강산의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북한 땅을 밟을 그 날을 그리며 무사히 모꼬지를 마쳤다.

/글·사진=조아현 기자 hyang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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