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본 조간신문에는 설악산 대청봉에 올 가을 첫눈이 내렸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기사와 함께 배치된 사진 속에는 눈과 단풍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정 민 구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


눈이 내린 가을에 대한 단상


며칠 전에 본 조간신문에는 설악산 대청봉에 올 가을 첫눈이 내렸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기사와 함께 배치된 사진 속에는 눈과 단풍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무한한 상상력의 자극을 위해서, 굳이 그 사진이 흑백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득 가을에는 단풍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겨울에는 눈꽃을 보기 위해서 산에 갈 필요가 없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의 등산으로 두 가지 모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 눈이 덮인 단풍을 보는 것도, 가을빛에 녹아든 눈에 함초롬하게 젖어 있는 풀잎을 보는 것도, 초초한 듯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을 접어 재활용 상자 안에 넣고,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가던 도중 차내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단아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가을은 가을다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 모든 것은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곳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이제 막 학문의 길에 접어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보고자 하는 것을 먼저 파악한 후에, 최종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뜨겁게 매진해야만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젊다는 것을 밑천으로 하여 끝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찬란하고, 자신에 대해 진실로 깨닫고자 하는 정신은 숭고하다는 말이 있다. 생각해보면, 도전한다는 것은 자기의 바깥에 있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 된다. 자기의 바깥으로 나아간다는 자기의 안을 디딤대로 삼아야 안정적일 수 있다. 그래서 도전하는 정신은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실천에 행해질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한편 이것은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라고 말한 노신과 같이 자신을 넘어서서 누군가에게 자양이 되고자 하는 정신과도 통하게 된다. 결국 가장 알맞은 곳을 찾는 것,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 학문을 시작하는 것,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을 옹골지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어엿한 성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요,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다. 이런 계절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과연 알맞은 곳에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 방법이란 스스로 찾아야하는 것인데, 대부분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이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억지소리의 하나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가을에는 울긋불긋 피어있는 단풍과 미처 기대하지 못한 겨울눈이 한갓지게 내리는 가슴 속으로, 아니 미처 떠올리지 못한 추억 속으로 산책해보는 것이 어떠할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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