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달 교수들과 인문대학장들이 나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를 향해 인문학 진흥기금과 인문한국위원회 등의 설치를 제안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최      협

(인류학과·문화인류학)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빈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달 교수들과 인문대학장들이 나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를 향해 인문학 진흥기금과 인문한국위원회 등의 설치를 제안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런데 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물질적 가치의 지배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만 전가하다보니, 비판도 도구주의적 방식으로 되돌아오는가 보다. 복거일 같은 이는 독설을 쏟았다. 지금 한국에서 운위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는 쉬운 말로 번역하면 ‘교육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문학 교수들)의 경제적 문제(=위기)들’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향기롭지 못한 이야기이다.

가을은 사색과 독서를 품어 안는다. 그래서 인문학적 향기가 그리워지는 계절, 문득 인문학의 본질을 일 깨워주는, 그러나 매우 평범한 책이 떠올랐다. 미국의 중견 영화평론가 겸 언론인인 데이빗 덴비라는 10여 년 전 50대 중년이 되어 다시 모교인 컬럼비아대학에 돌아와 1년 동안 강의를 듣고 난 후 책을 펴냈다. 그는 바쁘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점차 ‘지식이 없는 정보, 원칙 없는 의견, 믿음 없는 본능만 있는 존재’로 변모해 감을 느꼈다한다. 이것이 그를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인문학 강의를 듣도록 만들었다. 덴비라가 선택한 과목은 ‘인문학과 문명’. 고대의 호메로스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현대의 하버마스와 푸코에 이르기까지 서구문명의 원전들을 강독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왔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느낌을 가졌다. 중년의 남자가 가졌던 방향감각의 상실과 정체성의 위기를 인문학의 향기를 맡으며 극복한 것이다.

덴비라의 책 ‘호메로스와 테레비’를 접하고 나는 내 나이 40이 넘어 하버드대학에서 들었던 교양강의를 생각했다.  1987년 일년 간 하버드연경연구소에 초빙되었을 때, 심리학과에 다니던 조카의 권유로 심리학과의 브렌단 마허교수가 개설한 ‘인간본성에 대한 개념들’이라는 과목을 들었다. 하버드의 교양과목은 원로교수들이 본질적,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개발하여 창의적인 내용을 다룬다. 내 나름대로 바쁜 일정이 있었기에 교육에 참고해보는 정도로 가끔 청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유전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 행태주의, 사회생물학에서 본 인간의 본성에 대해, 백발의 노 심리학자가 독창적으로 풀어가는 강의를 들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특히 B.F. 스키너를 다루는 행태주의부분에서는 이미 하버드에서 은퇴한 스키너 본인이 직접 초빙되어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스키너교수의 그 다음해 귀국 후 사망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했으니, 그 해가 그의 마지막 강의였던 셈이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교양강의였다. 대학에서 풍기는 향기는 바로 이런 것이고, 그러한 학문의 향기가 우리를 무언가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 느꼈다. 귀국 후 그와 같은 교양강의를 나 자신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자기성찰에 대해 생각한다.

 신문을 보니 지난 9월 26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인문학관련 학술제에서 성균관대의 이기동 교수는 “인문학을 망치는 주범은 나 같은 대학교수”라고 자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참선이 뭐냐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 시간도 참선을 안 해봤고, 공자 사상으로 공부한 사람이 전혀 어질지 못한 게 인문학의 현주소”라며 다분히 비유적인 지적도 했다. 이러한 자성과 지적은 참으로 하기 힘든 일이다. 20여년을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논문 몇 편 쓰지 못해도 대학에서 도태되지 않고, 보직이나 쫓아가는 교수들이 주위에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그러한 자기성찰은 참으로 귀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자의 위기인가, 또는 인문학교수의 위기인가, 아니면 인문학의 빈곤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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