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가 한반도를 휩쓸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는 아니겠지, 나는 피해가겠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수많은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피해를 남겨두었다.
나도 그랬다. 대학 복학 후 2,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선배들의 푸념어린 한탄 속에서 ‘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할 때, ‘나는 아니겠지, 나는 잘되겠지’ 하고 큰 자신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취업시즌이 다가오고 졸업날짜는 더욱 더 압박이 들어올 때 그제야 나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이력서 란에 쓸 수 있는 자격증 란에는 오직 자동차운전면허 밖에 없었고, 모두들 기본이라고 하는 TOEIC 점수는 이미 바닥을 긴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이럴 거라면 학과 공부라도 충실할 걸… ‘난 그동안 뭘 했지?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하는 생각만이 나를 위로할 뿐이었다. 시험기간에만 열심히 그것도 아침 일찍 서둘렀던 도서관도 이제는 나의 본거지가 된지 오래다. 막상 앉아 있어도 멍 하니 있을 뿐 대책을 강구 할 수 없었다. ‘취업은 재수가 없다’고 하는데, 늦게나마 시작한 TOEIC책을 볼 때도 눈에 들어오는 건 영어 단어가 아니라 저번에 여러 회사에 집어넣었던 서류통과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 한 구석 검은 구름은 도저히 걷어 낼 수가 없다.
특히 이번처럼 예년보다 길어진 연휴는 남아 있는 자신감마저 수그러들게 한다. 모두를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재밌는 시간도 보내고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을 어느 누군가 하고 싶지 않겠는가? 며칠 전 신문에 실린 한 여론 조사에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추석에 가장 큰 고민’에 대한 물음에 63.8%가 ‘친척, 친지의 취업에 대한 질문’을 꼽았다.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이 현실을 누구를 탓해야 할 것인가? 취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부족을 탓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가진 것은 없으나 너무 눈이 높은 우리 자신들을 탓해야 할 것인가? 학과 공부 핑계로 발길이 끊어졌던 고향에 정말 이번 추석은 내려가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답도 가지지 못한 채 오늘도 내 발걸음은 또 다시 백도를 향한다.
2006년 9월 어느 날 공대 취업준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