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를 넘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새벽녘의 형광 색조가 조금 차분해 졌을 뿐 막 동트기 시작하기 무렵이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다. 우산으로 빽빽이 들어찬 혼잡한 출근길만이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고, 어둑한 하늘은 빗물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 침울한 하늘만큼이나 내 얼굴도 어두웠으리라. 비가 올 때면 내 얼굴이 하늘을 닮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 얼굴이 어둡다고 하늘이 나를 닮아버릴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뭐 누군들 그러겠지만. 

  아침 일곱 시를 넘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새벽녘의 형광 색조가 조금 차분해 졌을 뿐 막 동트기 시작하기 무렵이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다. 우산으로 빽빽이 들어찬 혼잡한 출근길만이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고, 어둑한 하늘은 빗물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 침울한 하늘만큼이나 내 얼굴도 어두웠으리라. 비가 올 때면 내 얼굴이 하늘을 닮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 얼굴이 어둡다고 하늘이 나를 닮아버릴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뭐 누군들 그러겠지만.

  저기압의 웅성거림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사실 그 목소리가 가리키는 게 내 이름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그 목소리가 암울한 대기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고음의 청명한 목소리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은 나의 중학교인지 초등학교인지를 알 수 없는 동창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애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으나, 머릿속에도, 가슴 속에도, 레테의 강을 건너버린 무의식 속에도 그 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오직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모를 졸업 앨범에나 그 아이의 이름자가 적혀있을까.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아 온갖 곳을 헤매는 동안 그 애는 목과 어깨사이에 우산을 받치고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수첩에 뭐라고 적었다. -좍-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 애는 내게 찢어낸 수첩 한 장을 건네고 유유히 사라졌다. 역시 한 옥타브 위 솔#의 청명한 목소리로 -반가웠어. 연락해-라는 말도 잊지 않은 채. 나는 수첩에 적힌 내용을 쳐다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구겨 넣어 버렸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사은품으로 준 나의 촌스런 초록색 우산에도 빗물이 미끄러졌고 그 애가 쓰고 가던 일곱 빛깔의 세련된 무지개 우산에도 빗물이 충돌했다.

  곧 빗줄기는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한 두 사람이 우산을 접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저마다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고는 우산을 접었다. 사은품으로 받은 나의 야쿠르트 우산도 접혔고 그 애의 무지개 우산도 접혀졌겠지만 하늘에 무지개는 뜨지 않았다. 역시 내 얼굴도 전보다 밝아지긴 했지만 무지개 같은 웃음기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는 그쳤다. 완전히. 하지만 여전히 도시는 축축했다.

  우산을 손목에 걸었다. 손의 여유가 생기자 나는 아까 그 애가 주고 간 종이를 꺼냈다. -w×3.싸이월드.컴/eun..xxx..xx.-우산은 평생 사은품으로만 들고 다니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애의 이름자도, 이메일 주소도, 휴대폰 번호도 찾을 순 없었다. 다만 무슨 웹 사이트 주소를 뜻하는 글자들이 쓰여 있었다. 그 애가 무슨 싸이월드라 불리는 다단계회사에서 근무하는 줄 알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하여튼 그때 나는 싸이월드를 잘 몰랐다.


  사은품 우산과 같은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나는 으레 하듯이 우선 컴퓨터를 켜고, 마이크로하고 소프트한 익스플로러를 열었다. 거짓말 보태서 헤리 포터에게 부엉이가 배달하는 편지들만큼이나 많은 스팸 메일을 확인, 아니 제거하고 웹 진을 뒤적였다. 문득 그 싸이월드가 생각났다. 검색창에 싸이월드라고 적자마자 스팸 메일을 배달하느라고 애쓴 그 부엉이들 깃털만큼이나 많은 결과들이 나열되었다.-오호라, 이 싸이월드. 수많은 유학생들의 적이라는 이 싸이월드였군.-난 그 언젠가 내 벗 중 하나가 이 싸이월드인지 사이다월드인지 싸이코월드인지 모를 말을 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모두 브이(V)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무엇인지 모를 행복과 의기양양함이 배어있었다. 자기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댄 사진들 속에서, 철학적인 그림들을 올려놓은 짧은 덧글들 속에서, 일촌이라는 사이버 세상의 혈연관계들 속에서, 이 속에서, 저 속에서, 속에서, 속에서......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토록 다양하고 대단하고 유명한 사람들과 지속이고 유대가 넘치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렇게 쿨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토록 현학적인 책들을 읽고, 뮤지컬과 오페라를 보고, 갤러리에 다니고, 바다 건너 프라하와 몰디브와 로마도 보고 왔어요.-이.렇.게.

  청포도에 고향의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듯 싸이월드 안에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사진과 그림과 글에 그들만의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있었다. 그것은 청포도처럼 칠월에만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팔월에도 열리고 구월에도 열리고. 여하튼 계속 열린다. 주저리주저리.

  나는 나를 둘 공간을 찾지 못했다. 동창의 이름을 찾지 못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이상한 느낌이었다. 싸이월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도 회원가입을 하고 로그인을 해봐!- 몇몇 링크들은 여러 번 나에게 회원 가입과 로그인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원더랜드의 앨리스 아니, 싸이월드의 앨리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싸이월드는 결코 이상한 나라가 아니었고 오히려 나, 앨리스가 정말 이상한 여자였다.

  나는 파자마 바람에 민소매티를 입고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었지만, 어디엔가 마음 둘 곳을 모르는 나의 아바타는 철이 지나도 한참을 지난 - 뱅뱅 사장에게는 꽤나 미안한 일이지만 - 이젠 누구도 잘 찾지 않는 허리까지 올라오는 뱅뱅 일자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 청바지의 브랜드는 뱅뱅이 아니라 아마 ‘주눅’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은품 우산처럼, 촌스런 일자 청바지처럼 인터넷의 익명성만을 생각해왔다. 그것에서 나오는 건방진 자유로움을 가끔은 혐오하고 가끔은 사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지개 빛깔의 우산과 리바이스 타입 원 청바지들은 이제 익명성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설레는 지를 자기 이름자를 걸고 만인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방문자 조회 수를 보며 그들은 오늘의 기분에 행복을 혹은 외로움을 체크한다. 나는 다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스러움은 하루아침에 정리될 문제가 아니었다. 며칠 후에도 여전히 내가 싸이월드의 앨리스로 살고 있을지, 아니면 조만간 싸이월드의 입국 희망서를 작성하고 정식 비자를 받을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싸이월드로 귀화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렇게 결심했다. 싸이월드의 앨리스가 아닌 리얼월드의 내가 되기로

  그리고. 나는

  마이크로하고 소프트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매크로하고 하드하게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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