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탕의 여인들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림 안에는 정말 욕탕이 있고 여인 하나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비추는 거울 속의 또 다른 여인. 그래서 욕탕의 여인이 아니라 욕탕의 여인들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차가운 타일 위로 뜨거운 물이 연기를 토해낸다. 뜨거운 수증기는 부유해보지도 못하고 욕실 바닥의 차가운 기운에 의해서 흘러 내리고야만다. 까만 대리석으로 지어진 욕조는 너무나 컸다. 욕조는 그녀의 몸을 안아내기 위해서 지어진 게 아닌듯했다. 그 커다랗고 까만 욕조는 그녀를 비추기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속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듯이 여인은 파란 엉덩이를 나에게 보여준 채로 욕조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거울이 몰래 그 여인을 들여다보고 나도 여인과 욕조와 차가운 타일 바닥과 여인을 채운 거울과 여인을 들여다본다.  

<단편소설>

욕탕의 여인


사회대 문헌정보학과 04

류  한  나



0.


 나는 욕탕의 여인들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림 안에는 정말 욕탕이 있고 여인 하나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비추는 거울 속의 또 다른 여인. 그래서 욕탕의 여인이 아니라 욕탕의 여인들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차가운 타일 위로 뜨거운 물이 연기를 토해낸다. 뜨거운 수증기는 부유해보지도 못하고 욕실 바닥의 차가운 기운에 의해서 흘러 내리고야만다. 까만 대리석으로 지어진 욕조는 너무나 컸다. 욕조는 그녀의 몸을 안아내기 위해서 지어진 게 아닌듯했다. 그 커다랗고 까만 욕조는 그녀를 비추기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속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듯이 여인은 파란 엉덩이를 나에게 보여준 채로 욕조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거울이 몰래 그 여인을 들여다보고 나도 여인과 욕조와 차가운 타일 바닥과 여인을 채운 거울과 여인을 들여다본다.



1.


 그녀는 욕조 안에 물을 하나 가득 받기 위해 수도꼭지를 젖힌다.


 새집의 내부 인테리어 공사 마감을 앞둔 이틀 전, 그녀는 남편에게 딱 한 가지를 요구했었다. 욕실만은 제발 그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도록 내버려달라고. 남편은 왜 이제야 그런 요구를 하냐고 묻지 않은 채 아주 다정히 그러자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욕실의 내부 설계도를 남편에게 건냈다. 전문가의 설계도처럼 정교했다. 도면 아래에는 마감재를 사올 인테리어 집의 전화번호까지 있었다. 이미 남편이 해놓은 욕실을 다시 뜯어내고 그녀의 계획을 받아들이느라고 새집의 입주일은 예정보다 닷새가 늦어졌다.


 욕실 바닥은 보랏빛이 나는 푸른색이다. 십 년 전, 그녀가 남편에게 사주었던 스웨터의 색깔과 꼭 닮아있다. 욕조는 유난히 작고 가는 그녀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좁게 설계되었다. 문에 매달아진 포푸리는 욕실의 습기에 염이 된 주검 같았다. 아니 본래 꽃의 주검이었다. 어디선가 묻혀야 할 주검이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 채 장식으로 남아야했던 포푸리. 장식물로서의 그 유일한 이유였던 포푸리의 향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바싹 말라야 가치를 하는 몸뚱이는 매일 같이 그녀가 받는 욕조 물의 열기에 축축해졌다. 남편은 말했었다. 욕실에는 하트 체인 화분을 놓자고. 그러나 욕실 안은 살아있는 것을 거부했다. 한번 시체가 된, 아름다운 시체가 되었기에 행복했을지도 모르는 포푸리는 욕실 안에서 진짜 죽음을 맞았다.

 작은 욕조라서 물은 금방 채워졌다. 그녀는 욕조에 물을 받을 때 욕조 바로 위의 수도꼭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샤워기를 벽에 고정시키고 욕조에 물을 받았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곧장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욕실 안에 더운 기운과 적당한 습기를 만들어놓고 욕조 안으로 흘렀다. 그럴 때면 욕실의 한 벽을 채우는 거울은 본래의 몫을 잃었다.

 그녀는 이제야 문을 잠그고 옷을 벗어 변기 위에 올려놓는다. 왼쪽 다리를 욕조 안에 들여놓는가 싶더니 그녀는 다시 욕실 문이 잘 잠겼는가를 확인한다. 손잡이를 잡고 안팎으로 흔들어본다. 그 바람에 포푸리 꽃잎 하나가 그녀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져 매달린다. 그녀는 무엇엔가 쫓기듯 갑자기 뒤를 돌아 거울을 바라본다. 그녀 머리위에 포푸리 꽃잎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촌스러운 분홍색 꽃잎이다. 거울은 뿌옇게 젖어서 그녀를 하나도 비추어내지 못한다. 그녀는 욕조 안에 발을 엉덩이를 가슴을 담근다. 정수리까지 모든 몸이 젖도록 얼굴을 수면 위로 아래로 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2.


 “이름이 뭐예요?”

 “숙이요. 문숙이.”

 “아 문숙희요? 숙희씨는...”

 그녀는 급하게 상대의 말을 끊었다.

 “아니 숙희가 아니라 숙이라니까요.”

 “아 숙이라고요? 예. 문숙씨.”

 그녀는 그녀의 이름이 문숙희도 아니고 문숙도 아닌 ‘문숙이’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그만두고 만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누군가 이름을 물을 때마다 그녀는 이내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사실 그녀의 큰언니는 문명희 그녀의 작은 언니는 문윤희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만 문숙이이다. 그리고 이름을 지었다는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보고 숙이야, 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숙아 숙아, 이렇게만 불렀었다.

 희(僖). 그녀의 언니들의 이름은 기쁠 희자 돌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명희를 명희, 라고 윤희를 윤희, 라고 불렀다. 그러나 유독 그녀를 두고는 숙아, 숙아, 이렇게 불렀었다. 그리고 그녀 언니들의 이름자처럼 똑같이 기쁘다는 듯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이(怡)로 끝난다.

 숙이(淑怡). 어릴 때 숙이는 나도 숙이라고 불러달라고. 그게 싫으면 언니들도 똑같이 명아, 윤아, 이렇게 부르라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애원했었다. 그녀는 그녀의 언니들의 이름만이 희로 끝나는 게 싫었다. 아니, 그보다는 똑같은 뜻을 품은 글자였다는 게 더 싫었다. 기쁘긴 했지만 그녀의 어미가 윤희나 명희를 낳았을 때의 기쁨과 숙이를 낳았을 때의 기쁨은 다른 종류였단 말인가

  “아야, 그게 뭐가 어찐다고 그러냐. 막말로 느그 언니를 명아, 윤아, 라고 부르면 그게 머시마 이름인지 가시나 이름인지 분간이 안 되지 않겄냐? 그래도 느 이름은 숙잉께 어뜨케 불러도 가시나 이름잉갑다, 하고 다 알아먹을 것이 아니냐. 별 이상한 가시나 다 보겄네.”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도 간단하게 그녀의 핵심을 비켜 말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냉큼 술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툇마루에 놓인 양은 주전자를 들고 달렸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집 대문을 빠져나와서야 그녀는 타박타박 여유를 두고 걸었다. 돌담에 핀 봉숭아가 유난히도 하얗다. 있지, 난 또 아버지 술을 받으러 건넛집에 가.

 말이 건넛집이지 그냥 건넛집은 아니었다. 건너고, 건너고, 건너고. 한참을 건너야 그 건넛집이 나왔다. 그녀는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의 술심부름을 도맡아 하였다. 논두렁을 건너고 감나무 집을 지나고 대나무 밭을 돌아야 나오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개 한 마리와 수탉 한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암탉이 두 마리인가가 더 있었다. 개는 자기 집에서도 많이 보아왔던 터라 하나도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수탉은 어린 그녀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수탉은 알록달록했다. 작은 키를 가진 그녀의 허리춤까지 오도록 키가 컸다. 숙이는 수탉의 날렵한 부리가 무섭다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암탉은 하얀 깃털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집의 개는 숙이네 개처럼 희뿌연 황토 빛 털을 지녔었다. 그러나 수탉만은 현기증이 일어나도록 알록달록하였다. 붉은 황색 깃털과 푸르고 검은 보랏빛 깃털들. 뾰족이 올라온 닭의 벼슬. 붉다. 눈이 부시도록 붉었다.


 “아저씨 저 왔는데요. 숙이요.”

 아저씨는 입가에 매운 고춧가루를 붙이고 방문을 열어 숙이를 본다. 숙이는 아무 말 없이 빈 양은 주전자를 내민다.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던 밥을 모두 치우고 상을 물리고 냉수 한 사발에 트림을 끄윽 한 후에야 밖으로 나오셨다. 아저씨의 행동은 여유로 가득했다. 아저씨는 숙이의 작은 두 손에 들린 양은 주전자를 잡아채어 창고로 들어갔다. 수탉이 숙이에게로 다가온다. 저리가. 저리가란 말이야. 자꾸 다가오면 너를 발로 걷어 차 버릴 테야. 가. 숙이는 계속 주문을 외운다. 어지러워 네 깃털을 다 뽑아버릴 테야. 어지러워 저리가란 말이야. 숙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힘주어 꾹 감았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숙이는 놀랐지만 더욱 세게 온힘을 다하여 눈을 감는다.

 “아가, 숙아.”

 아저씨의 부름에 숙이는 눈을 떴다. 수탉은 없었다. 숙이의 신발 코를 그 집 누렁이가 햝아 대고 있다. 아저씨는 주전자를 툇마루에 놓고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숙이는 눈물이 났다. 그냥 왜 흐르는지도 모를 눈물이 났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곤 주전자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달렸다. 술이 쏟아지지 않도록 주둥이를 꼭 막고는 힘껏 달렸다. 공포에 질린 어린 숙이는 술을 쏟았다고 핀잔을 줄 아버지가 더 무서웠나보다. 대나무 밭에 이르러서야 숙이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주위가 온통 파랬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대나무 밭에 들어가면 꼭 바람소리가 났다. 쉬이. 쉬이. 쉬이. 손등을 부지런히 움직여도 닦아낼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뜨거운 눈물이. 대나무 숲 사이의 바람에도 식을 줄 모르는 눈물 줄기가 숙이의 차디찬 볼 위를 흘러내렸다. 내가 울고 있다고. 이 숙이가 우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뜨거운 입김이 숲 속을 온통 덮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울부짖을수록 숙이의 울음소리는 대나무 밭의 바람 소리에 가려지고, 가려지고 하였다.

 숙이는 대나무 밭을 건너고 감나무 집을 지나고 논두렁을 뛰어서 집에 왔다. 보물이라도 되는지 양은 주전자를 작고 여린 두 손 안에, 헐떡이는 숨에, 곧 끊어질 듯한 가슴 안에 품은 채로 말이다.

 “숙이야, 손등이 왜 그래? 어디서 다쳤어? 응?”

 숙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숙이는 몰랐다. 명희 언니의 물음이 떨어지고 난 후에야 숙이는 지 손등을 내려다본다. 하얗고 작은 손등에 붉은 핏자국이 서려있다. 피, 붉은 피다. 수탉. 그 퍼렇고 붉고 까만 닭이 숙이의 손등을 쪼은 것이다. 닭의 깃털에 어지러워 숙이는 그 부리가 자신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건넛집에서 눈을 꼭 감고 있던 그 순간에. 숙이는 눈을 감으면 캄캄해질 거라고. 닭 따위는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눈꺼풀을 뚫은 여름 낮의 햇빛은 숙이의 눈동자에 쏟아졌으니. 눈을 감아도 앞이 하얗고 어지럽고 언뜻언뜻 검은 자욱들이 수탉 같았으리라. 그 깊은 환영과 두려움 속에서 숙이는 정말 몰랐다. 닭이 자기를 쪼으리라곤.

 숙이는 명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운다. 숙이의 얼굴이 명희의 가슴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명희는 숙이를 더욱 깊이 감싸 안는다. 숙이는 갑자기 설움이 치민다. 설움이, 명희의 따뜻한 가슴으로 설움이 밀려온다.


 숙이가 젖먹이였을 때, 숙이의 엄마는 젖을 때려고 젖꼭지에다가 약을 발랐었다. 익모초를 빻아서 물을 내고 그 쓴 물을 젖꼭지에 발라두었다. 그 물이 흔적도 없이 말라도 젖꼭지에 그 쓴 맛만은 남아있었다. 그리곤 숙이에게 젖을 물렸다. 숙이는 세차게 도리질을 했었다. 그러나 반나절쯤 지나고 나면 또다시 숙이는 어미의 젖을 찾았다. 그러기를 보름. 숙이의 입에는 지어미의 젖꼭지가 결국 고문이 되었다. 그렇게 어미는 필사적이었다. 바람대로 숙이가 어미의 젖을 더 이상 물지 않게 되었을 때, 어미는 집을 나갔다. 숙이가 두 돌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어미는 익모초가 해산한 여자에게 좋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하지만 해산한 여자에게 좋든 어쩌든 간에 그 약초는 너무나 썼다. 분명히 숙이 엄마는 그 약초가 쓰다는 사실만은 알았을 것이다. 가장 포근해야할 시기에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할 어미의 젖꼭지부터 쓴맛을 경험한 숙이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숙이의 의식 속에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숙이에게는 명윤이라는 남동생이 있다. 아니, 있었다. 숙이도 모르는 남동생이다. 아니, 동생인지 오빠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숙이와 명윤은 한배에서 나란히 컸다. 숙이 엄마는 용하다는 약방에 자주 들락거렸다. 약방 주인은 숙이 어머니에게 사내아이를 밴 게 분명하다고만 했을 뿐, 쌍둥이를 가진 것 같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사내아이를 가진 게 확실하다는 약방 주인의 말에 숙이 아버지는 해산일이 다가오기 넉 달 전부터 사내아이의 이름에 대해 궁리하였다. 그리고 명윤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숙이와 명윤이가 함께 들어있는 숙이 엄마의 배를 쓰다듬으며 아버지는 명윤아, 명윤아, 명윤이의 이름만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르곤 하였다.

 장마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다. 하루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하루는 개었지만 햇빛을 찾아볼 수 없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명희도 윤희도 축축한 날씨에 지쳐 있었다. 그러나 숙이 아버지만은 해산 일을 앞둔 숙이 어미의 배를 지켜보며 싱글벙글하였다.

 유난히 굵은 비가 퍼붓고 바람이 세차던 날, 숙이 어미는 진통을 시작하였다. 눅눅한 방에 불을 지폈다. 메주콩을 삶은 날 같이 구들장이 뜨거웠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명희는 물을 끓였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모두 약간 초조한 기색을 보였으나 숙이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그런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굵은 빗소리에 가려져 숙이 어머니가 악을 쓰는 소리는 슬프게 들리지는 않았다. 정오를 막 넘겨 시작된 진통은 비가 그치고 해가 지고 나서야 마침내 끝이 났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멎어야할 숙이 어미의 신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산모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숙이 아버지는 순간 움찔했다. 방금 전까지 미소로 가득했던,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 미소가 갑절이 되었던 숙이 아버지의 안색이 이내 흐려졌다. 사람들의 안도의 한숨은 이내 웅성거림으로 바뀌었다.

 “고추 하나 보려다가 광골댁 멀리 가부는 거 아녀?”

 “애가 나오믄 아픈 거는 담배 연기 없어져 분 거 같이 없어져 분디 그러네.”

 “이번에는 고추라서 그런가?”

 명희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멎었다. 숙이 엄마의 고통에 찬 소리도 그쳤다. 하지만 방에 들어간 숙이 아버지의 고통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아니여, 이게 아니란 말이여. 명윤이가 고추가 없단 말여. 명윤이 고추가 어디로 가부렀단 말이냐. 흑흑흑. 이년아. 이것이 뭘 낳은 거여.”

 숙이 아버지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숙이 어미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숙이 어미는 전혀 아프지도 않은 듯이 그대로 소리 없이 맞고만 있었다. 그냥 한 서린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강보엔 숙이가 싸여있었다. 그리고 요강 옆엔 명윤이가 되었어야하는 아이가 있었다. 고추를 단 아이었으나 숨을 쉬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추를 단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숙이는 닭이 자기를 쪼아댔던 날, 그날의 명희 언니의 품에서도 듣지 못하였다. 며칠 전 자신의 생일날 숙이는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은 숙이의 생일날이기도 했으며 명윤의 제삿날이기도 했다.



3.


 그는 수술실 앞에 앉아 계속 시계에 눈을 주었다. 복숭아 모양의 램프에 불이 들어왔다. 그는 명희가 있는 수술실로 들어가서는 명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처제인 윤희에게 전화를 했다. 명희가 늦둥이를 낳았다고 예쁜 공주님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통화를 끝낸 후, 그는 작은 처제인 숙이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통화버튼을 누르다가 이내 종료, 또 누르다가 이내 종료시켰다. 명희가 해산을 하던 때만큼 아찔하지는 않았으나 그와 유사한 기분이었다. 무어라고 작은 처제에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숙고하다가 그는 숙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는 괜찮아. 아이도 건강하고. 딸이야.’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주방에서 숙이는 새우를 튀기고 있었다. 기름 끓는 소리가 휴대폰 벨소리보다도 더 요란했을까. 숙이는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에야 숙이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스무 글자 가까이 되는 문자 메시지가 숙이에게는 이렇게 짧게 요약되었다. “건.강.한.아.이.” 숙이는 자기의 한껏 불러온 배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속으로 몇 번이고 말했다. 이 아이는 정말 건강할 거야. 그렇고 말고. 건강할거야. 숙이는 건강이라는 말에 애써 힘을 주며 말했다.

 다음날 아침, 숙이는 꽃과 과일을 사들고 명희가 아직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조카의 이름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명희의 머리맡에는 이미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2학년이 된 명희의 아들 둘이 서 있었다. 그랬다. 어제 세상에 나온 아이는 늦둥이였다. 명희 언니의 나이는 벌써 올해로 마흔 하나다. 숙이는 명희를 너무나 부럽게 바라본다. 조카 둘은 숙이 이모의 배를 쳐다보았다. 옆에 서있던 형부도 숙이의 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숙이는 순간 귀까지 새빨개지고야만다. 등 쪽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치는 걸 느낀다. 숙이는 저도 모르게 작은 손으로 배를 가렸다. 그리고.


 행복한 네 식구, 아니 다섯 식구였다.

 곧 명희언니가 퇴원하는 날이 오겠지. 말 그대로 건강한 아이와 그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건강한 엄마일 테고. 막 해산했을 때와는 달리 명희언니의 입술엔 붉은 색조가 완연할거야. 그리고 웃음도 만발이겠지. 언니의 아주 건강한 아들 둘은 병원로비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고.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 팔목에 링거를 하나씩 매단 사람들 사이로 공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두 아이도 공을 좇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이 보여. 보통 때 같았으면 큰소리로 화냈을 언니지만 그 날만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거 같아. 그리고 형부도 그럴 거고. 일관성 없는 부모라며 꾸짖을 이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 날만은 언니와 형부 모두 관대함을 베풀어야 하는 날일 거야. 그리고 모두가 언니와 형부에게도 관대해야하는 날이겠지. 다른 세상을 보듯이 숙이는 행복한 명희를 바라보았다.

 숙이는 터벅터벅 입원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산부인과 담당의를 만나러갔다. 숙이 뱃속에 아이는 여덟 달 째이다. 숙이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의사를 만난다. 의사가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숙이가 그것을 요청했었다. 몇 번이고 숙이는 확인한다. -아이는 건강하죠? 언제나 그렇듯 의사는 걱정을 놓으라고 했다. 모두 건강하단다. 그녀의 해산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의사를 만나고 오는 날엔 그녀의 기분은 평화스러웠다. 그녀는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렀다. 대하 몇 마리를 사고 칵테일 새우를 샀다. 브로콜리를 비닐 백에 채워 담았다. 지하에서 7층까지 올라간 그녀는 뱃속에 아이를 위한 양말 한 켤레를 골랐다. 베이지 색에 하늘빛 토끼가 그려진 양말이었다.


 대하를 손질한다. 커다랗고 살이 제법 오른 새우였다. 새우 껍질을 벗겨내다가 그녀는 약하디 약한 새우 껍질에 그것보다 더욱더 약하디 약한 손을 베고야 만다. 피는 보이지 않았지만 손끝이 아리하다. 그녀는 식탁에서 튀어 올랐다. 베인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반창고를 찾는다. 아리한 통증은 손가락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만삭이 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피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혈할 일도 없었으나 그녀는 반창고로 자신의 오른쪽 엄지를 싸맸다. 여덟 마리의 대하 중에서 세 마리만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무여 마리의 칵테일 새우와 손질을 마감 못한 대하가 식탁위에 너부러져있다. 어지럽고 어수선한 모습이다. 어린 날 숙이를 쪼았던 수탉의 모습과 유난히도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손질한 대하에서는 알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두가 수컷이었을까. 어지럽던 수탉의 환영이 비켜가고 손끝의 아리함이 진정되었을 때, 그는 그 어지러운 식탁과 맞섰다. 그곳에 앉아 이번엔 손질하기의 차례를 바꾸었다. 다음은 칵테일 새우 차례였다.

 숙이는 칵테일 새우를 삶아냈다. 회색빛의 새우가 붉게 익었다. 차가운 물을 볼에 담고 얼음을 넣었다. 그리고 붉게 변색된 새우를 그것에 옮겨 담았다. 칵테일 새우가 차가운 기운을 맞이하도록 여러 번 휘저은 후, 그녀는 새우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새우의 머리를 떼어낸다. 그 사이로 무수히 많은 알들이 보였다. 대하의 더듬이 길이 정도 되는 작은 칵테일 새우에서 수없이 많은 알이 쏟아져 나왔다. 숙이는 그만 그 알을 손으로 으깨어버렸다. 알더미를 손에 움켜쥐고 힘을 주었다. 칵테일 새우가 담긴 그릇을 향해 내민 주먹. 그 틈 사이로 작은 알들이 비집어 나왔다. 그녀는 빈대를 죽이듯, 바퀴벌레의 알을 으깨듯 그 알 하나, 하나를 모두 으깨어 버렸다. 식탁 한 켠엔 소형 믹서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걸 쓰면 좋겠다, 했으나 그녀는 알을 깨는 작업을 손으로 해냈다. 대하 껍질에 찔린 상처의 아리함도 잊은 채 그녀는 계속해서 새우를 손질하는 작업, 아니 이미 죽어버린, 뜨거운 열기에 한 번, 차가운 기운에 두 번 죽어버린 새우 알의 학살 작업을 진행했다.

  그날 저녁엔 새우 샐러드가 상에 올랐다. 껍질을 잃고 알을 잃은 새우들이 잘게 선 브로콜리 사이로 보였다. 푸른 브로콜리와 분홍빛의 새우는 눈으로나 입으로나 기막히게 어울렸다. 그녀의 해산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의 해산일 만큼 남편의 퇴근 시간도 빨라졌다. 그녀는 임신 중에 딱히 먹을 것을 찾지는 않았으나 남편은 항상 손에 군것질거리를 들고 오곤 하였다. 그녀는 그것을 고맙게 받았지만 입에 댄 적은 별로 없었다. 그녀의 냉장고는 저녁이면 남편이 사오는 군것질 거리로 찼고. 낮이면 먹성 좋은 옆집 진우 엄마의 활약으로 비워지곤 하였다. -새댁은 좋겠어. 우리 진우 아빠는 어쨌냐면 말이지....- 진우 엄마는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을 따로 가진 듯 먹기와 말하기를 거의 동시에 해댔다. 계속해서 진우 아빠에 대한 흉이 이어졌다. 숙이는 진우 아빠 흉보기에 공감하지 않았다. 다만 숙이는 그 새댁이라는 말이 싫었다. 자신도 누구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혼을 한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숙이는 새댁이었다. 진우 엄마의 먹성과 입심이 발휘되고 있을 동안 숙이는 자신의 배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본다.

 진우엄마는 늘 그래왔듯이 숙이의 군것질거리여야 했던 음식을 모두 먹고 음식이 담긴 그릇을 싱크대 개수대로 가져갔다. 비닐 봉투를 쓰레기통에 담고 음식물 찌꺼기도 음식물 쓰레기통에 담았다. 놀러왔는지 먹으러 왔는지 도무지 모를 진우엄마는 -나 잘 놀다가 가, 라고 이야기하여 자신이 무엇 때문에 새댁을 보러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추가시켜 정리를 한 번 더 하였다. “새댁 몸 조심해.”

 순간.

 숙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숙이는 소파에 등을 대고 연신 힘겨운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진우 엄마는 남편의 전화번호를 대라며 숙이의 몸을 흔들었다. -단축키 2번이요. 숙이는 힘겹게 2번이라는 말을 해냈다. 그 뱉어낸 말과 함께 숙이는 눈물을 흘렸다.

 “새댁이 애를 낳으려나봐.”

 전화기를 통해 남편에게 닿는 진우엄마의 목소리였다.


 남편은 슈퍼맨같이 날아왔다. 슈퍼맨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왼쪽 셔츠 주머니가 잉크로 진하게 얼룩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슈퍼를 상징하는 에스(S)자 모양은 아니었다. 슈퍼맨이 날렵한 몸놀림과 우량한 팔뚝의 힘으로 지구를 지켜냈다면, 숙이의 남편은 펜 뚜껑의 여닫음을 지속하여 숙이와 자신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날아올 듯이 택시를 타고 왔다.

 숙이를 업고 숙이에게 올 때 날아다녔던 택시에 그녀를 태웠다.

 “헌재병원이요.”

 기쁘고 가뿐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숙이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그는 분만실 복도에서 서성였다. 드라마에도 나오고 영화에도, 소설에서도 나오는 장면이 네 시간째 이어졌다. 철저히 금연구역인 병원의 복도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담배를 한숨으로 피워댔다. 그의 한숨도 네 시간째 이어졌고 그의 땀도 네 시간째 흐르고 있었다. 그의 셔츠는 땀으로 흥건했고 만년필 잉크가 터져 나와 얼룩졌던 검은 그림자도 땀에 희석되어 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분만실에서 초록색 복장을 한 남자하나와 여자 둘이 나왔다. 그러나 복숭아인지, 고추인지를 알려줄 램프는 깜빡이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그것 중에 하나가 깜빡여주었더라면......

 남편은 처형들에게 숙이의 분만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숙이는 그대로였다. 단지 한껏 융기했던 배가 침강을 거듭했다는 게 달랐다.


 네 번째 유산이었다.



4.


 숙이는 그대로가 아니어야했다. 지금보다 나빠지더라도 지금과 똑같은 것은 적어도 아니어야했다. 유산 후에 늘 찾아왔던 고통은 예전과 같아서는 안 되었다. 더 힘들고 고된 것일지라도 지금과만 다르다면 살 수 있겠다고 숙이는 생각했다. 더 극심한 고통일지라도 지금 숙이가 겪는 고통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면 그녀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욕탕의 여인들이라는 그림을 바라다본다. 그 안엔 목욕하는 여인이 있고 투명한 아이 하나가 쭈그려 앉아있다. 여인은 아이의 등을 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며 목욕을 시킨다. 하얀 타일에 아이가 미끄러질 듯 자세를 취한다. 해가 가라앉고 불이 꺼진다. 그 어둠의 모서리 속에 욕탕의 여인, 그 여인의 엉덩이가 빛나고 있다. 오랜만에 들린 수색(水色)역에서 이 그림을 산 기억을 꺼냈다. 까만 어둠이 더해져야 비로소 반짝이는 물빛처럼, 그렇게 그녀의 엉덩이는, 작고 가는 손목은 내 어둠의 모퉁이에서 또렷이 반짝이고 있었다. 수색역, 그 어느 모퉁이에서 이 그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여인을 만난 날 - 취기가 도는 날이었고 무척이나 어두웠던 날임을 기억한다. 그 까만 공기 사이로 도시의 불빛들이 손목을 그은 듯 붉게 흘러 다니는 날임을 기억한다.


 숙이는 머리까지 자신을 덮은 물 바깥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남편이 계속해서 잠긴 욕실문을 두들긴 탓에 분홍 포푸리 꽃잎들이 욕실 바닥에 하나, 둘 떨어진다. 그중 하나의 꽃잎이 부유하다가 욕실 선반에 착지한다. 역시 분홍의 꽃잎. 그 꽃잎은 선반에 놓인 남편의 물건을 덮었다. 반짝.


 면도날이 푸르게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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