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광주에서는 여러 형태의 5.18항쟁 기념식이 열린다. 시청과 5.18재단이 주관하는 공식적인 행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회기관에서도 자체적인 기념식을 기획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국가에서도 5.18 국립묘지 참배를 중요한 정부행사의 하나로 인식하여 대통령을 위시한 수뇌부들이 광주를 방문하고 있다. 과거 26년전 이 땅에서 벌어진 반독재투쟁의 열기와 잔혹한 시민학살의 상흔은, 이제는 광주를 대표하는 역사적 브랜드로 자리 메김 되어서 전국적인 행사로 승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광주에서는 여러 형태의 5.18항쟁 기념식이 열린다. 시청과 5.18재단이 주관하는 공식적인 행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회기관에서도 자체적인 기념식을 기획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국가에서도 5.18 국립묘지 참배를 중요한 정부행사의 하나로 인식하여 대통령을 위시한 수뇌부들이 광주를 방문하고 있다. 과거 26년전 이 땅에서 벌어진 반독재투쟁의 열기와 잔혹한 시민학살의 상흔은, 이제는 광주를 대표하는 역사적 브랜드로 자리 메김 되어서 전국적인 행사로 승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5.18을 맞이하여 학생들은 한국적인 맥락에서의 5.18유산의 중요성과 함께 5.18이 아직도 독재에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들의 이상향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될 것이다. 즉 제3의 민주화물결에 편승하지 못한 많은 권위주의국가에서 민주화 운동단체들이 광주를 민주화의 모델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태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 등 인근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광주를 통한 한국의 민주화 경험’은 학습의 대상이자 미래의 방향으로 이해되고 있다. 지난 제3의 밀레니엄 첫해의 2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대학에서 개최된 대규모 학술행사를 기화로, 우리 대학은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연구와 교육의 메카로 주변 국가들에게 인식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우리 대학의 소망사업의 하나는 용봉 캠퍼스에 대규모의 동아시아 인권평화센터를 건립하는 일이다. 이러한 원대한 미래비전의 확립을 위해서라도 모든 구성원들이 5.18유산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공유함과 아울러서 위대한 전통과 경험에 대한 적극적인 대민홍보에 열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5.18의 출발점은 바로 용봉 캠퍼스이고 위대한 광주정신은 바로 교문에서 발아되어 시내로 전국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 5.17일 계엄령 확대조치로 말미암아 공수부대원들이 우리 대학 캠퍼스에 진을 치고 교문을 차단하자 이에 항거하여 학생-군 사이에 최초의 격돌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정문 앞이다. 후속적으로 다수의 전남대학생들이 도청 앞으로 집결하고 시민들과 연합하여 대규모 시위집단을 형성하였으며, 바야흐로 5.18의 한국사가 시작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대학은 물리적인 지표로 볼 때 5.18의 최대의 피해자이다. 우선 수많은 학생들의 억울한 희생을 보라. 그리고 양심세력으로 분류되었던 다수의 교수님들이 신군부의 강압적인 폭력에 의해 고통과 수형생활을 거치게 되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가시적인 피해사례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묻혀버렸던 사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당시에 대학운영자들 역시 군부에 끌려가서 모진 고생을 하였으며, 이분들은 대부분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구성원들도 심리학과 오수성교수의 지적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일종의 “빚 감정”에 사로잡혀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왔던가! 지금은 과거의 피해자 멘탈리티를 이겨내고, 주변국가에게 민주와 인권의 희망을 새겨주는 선구자적 태도를 5.18정신의 중심에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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