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은 필연적인 우연의 일치를 ‘의미 있는 일치’ 또는 ‘동시성의 원리’라고 정의 했다. 가령 서양의 문화수도인 ‘파리’는 ‘빛의 도시’라는 뜻이다. ‘빛고을’이 한국의 문화수도로서 동양의 문화 중심을 꿈꾸고 있음이 어찌 우연의 일치이겠는가? 필시 하늘의 뜻이었을 터이다. 이처럼 지명의 신비를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지명학이 종합학문으로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리라.  

용가봉생비서(龍歌鳳笙碑序)

칼 융은 필연적인 우연의 일치를 ‘의미 있는 일치’ 또는 ‘동시성의 원리’라고 정의 했다. 가령 서양의 문화수도인 ‘파리’는 ‘빛의 도시’라는 뜻이다. ‘빛고을’이 한국의 문화수도로서 동양의 문화 중심을 꿈꾸고 있음이 어찌 우연의 일치이겠는가? 필시 하늘의 뜻이었을 터이다. 이처럼 지명의 신비를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지명학이 종합학문으로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리라.

뛰어난 사물일수록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짝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소나무를 예로 들면 국화, 대나무, 학, 달 등 친구가 많다. 소나무는 송국, 송죽, 송학, 송월 하는 식으로 각각의 대위법을 대표한다. 그 가운데서 송죽매, 세한삼우의 우정을 어찌 빼놓을 수 있으랴?

이 점은 용과 호랑이도 비슷하다. 좌청룡, 우백호도 있고 용호상박도 있다. 이 글의 주제인 용과 봉황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용과 봉황은 기린, 거북과 더불어 사령(四靈)이다. 용과 봉황은 이들 사령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 그 하나하나 증거를 들어보자. 용집봉회(龍集鳳會라)라는 말이 있다. 용과 봉황이 모이듯 뛰어난 인재들이 집합함의 비유다. 그렇듯 용봉동에 호남의 내로라 할 인재들이 운집해 있음이야말로 용집봉회의 상징적 광경이 아니랴?

과연 빛고을의 용봉동에 모교가 있음보다 찬란한 천명이 또 어디 있으랴 싶다. 후학들에게 당부하여마지 않나니 고귀한 천명을 헛되이 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그대들은 이미 용봉지자(龍鳳之姿), 즉 용과 봉의 모습을 한 준수한 인재들이 아니었던가?

용비봉무(龍飛鳳舞)는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듯 기이한 산세를 가리킨다. 그 보다는 용봉 같은 인재들이 마음껏 그 재능을 세상에 떨친다고 의미 부여함이 옳을 듯싶다. 바로 용비봉치(龍飛鳳峙)가 그 뜻임에랴.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용반봉일(龍蟠鳳逸)은 용이 서리고 봉황이 편안히 깃들어 있듯이 뛰어난 인재가 아직 세상에 쓰여 지지 않고 있음의 비유다.

주역을 펴보자. 잠용물용(潛龍勿龍)은 물에 잠겨 있는 용은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잠용은 어찌해야 하는가? 장차 승천을 위해서 부지런히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나저나 모교에 용지를 판 일은 잠용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용지 옆에 동산을 만들고 벽오동과 대나무를 심자고 제안하고 싶다. 봉황은 벽오동에만 앉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 까닭이다.

거기에 용과 봉황의 조형물과 기념비를 세운다면 완벽이 아니랴? 삼가 그 비문을 덧붙여 말미로 삼는 바이다.


용가봉생비문(龍歌鳳笙碑文)

하늘의 의도는 참으로 심원하여 공자 같은 성인도 천명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하였다. 다만 ‘빛고을’에 용이 서리고 봉황이 깃든 상서의 땅이 있음에는 그 누구라도 천명을 의심치 못하리라. 비유컨대 ‘빛고을’이 용의 그림이라면 모교는 거기 찍어 넣은 눈동자다.

하늘의 점지를 받은 화룡점정의 땅에 용동봉경(龍瞳鳳頸), 용의 눈동자와 봉황의 목을 한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든지 춘풍추우(春風秋雨) 50여 성상이 흘렀다.

그게 어찌 용봉인들만의 자랑이었으리오? 이 땅의 더 할 나위 없는 다행이자 문창성(文昌星)의 축복이었을 터이다.

이처럼 용봉의 동산은 천지인 삼재가 천재일우처럼 만나서 거룩하게 형통한 약속의 땅이다. 그 동안 용봉인들의 감격과 회포와 자부심은 영산강의 흐름보다 도도한 바 있었다. 불꽃같은 저항의지와 대쪽같은 시대정신은 무등보다도 우뚝하였다. 새 천년 문화의 시대에 그 여명을 불러오는 희망의 원천이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찌 그 모든 영광과 고난까지도 용의 노래와 봉황의 생황으로 삼아 무등의 돌에 새기지 않을 도리 있으랴? 내 정신의 터를 묻은 여기 용봉의 동산에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비나니 용가봉생의 아름다운 노래 길이 그칠 뉘 없기를!

  2006년 3월 춘분날 농경과 2회 동문 황인용 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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