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제1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며, 이 권리는 주로 자기 의견과 사상과 정보를 전달할 권리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권리는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춤과 그림 등 다양한 형태의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정 표현도 이에 포함될까?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가 자유롭지 않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SF 시리즈 <스타트렉>의 ‘벌컨’에서는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벌컨은 사실상 군사독재이고, 벌컨인들이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자유가 <스타트렉>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다. 다만 감정을 표현할 자유가 없는 집단은 벌컨인만이 아니다.

우리 지구인도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예를 들어, 울음은 슬픔의 표현이자 울음을 통해 남에게 해롭지 않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누구나 감정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남성에게는 울음이 특히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아빠나 할아버지께서 우신 것을 본 적이 있나? 아주 슬픈 상황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셨을까? 그냥 울지 않으셨을까 아니면 못 하셨을까? 아마 비난이 두려워 평생 슬픔을 울음으로 표현하지 못해 결국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울 자유가 타인의 비난과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듯하다.

필자는 어렸을 때 ‘남자라서 울면 안 되는’ 두려움으로 울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울음을 참음으로써 슬픔을 충분히 느끼기가 어려워져 남과 공감하기 힘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에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보면서도 울지 못한다면 난 인간애가 정말 없다’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공감해야 인간이고, 그 때문에 슬퍼질 땐 울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감정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해로운 남성성을 탓할 수 있는데 ‘상남자는 울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은 20세기의 결과물인 것 같다. 과거의 ‘상남자’들은 잘 울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남자들은 꽤 자주 운다. ‘아킬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최고 전사이자 최고 울보이기도 했다.

보다 현대적으로, ‘톨킨’이 제1차세계대전에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쓴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 원정대의 남자 9명이 모두 우는 장면이 나온다. 충실성을 상징하는 ‘샘’이 특히 많이 울지만 심지어 상남자 원형인 ‘아라고른’도 눈물을 꽤 흘렸다. 의외로 ‘오크’가 운다는 내용은 없었다. 중간계의 자유로운 종족들과 다르게 ‘사우론’의 독재사회에 사는 오크는 울 자유가 없었나 보다.

물론 세계인권선언은 명시적으로 “모든 사람은 감정을 표현할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지 않지만 우는 아기에게 ‘넌 남자라서 울면 안 돼’라고 한다면 인권 측면에서 문제가 없진 않다. 성차별의 문제를 제외해도, 적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감정 표현을 억제하려는 행동은 의견을 나누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남의 자유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우론이나 벌컨이 하는 독재와 같다. 자유 사회에서는 우리는 모두 울 자유가 있다.

하도마 Thomas C. Adriaenssens(성균관대학교 법학과 박사수료)
하도마 Thomas C. Adriaenssens(성균관대학교 법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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