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인의 마지막 말은 “도영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고 바보같이 죽어버린 내 불쌍한 남자는 서울 근교 선산에 얌전히 누워있다. 나를 싫어한다던 연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자 나에게 달려와 물었다.

“찬경이는 땅에 묻히고 싶다고 했니?”

고개를 끄덕이고, 장례가 치러지고, 그가 옮겨지고, 흙이 그 아이 위로 툭툭 떨어졌다. 시간은 묵묵히 그의 공간을 채웠다. 그날 분 바람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가 그 바람이 다가오면 못내 울음 지었다.

요즘 연기를 극단 가서 배우는 사람은 없다. 걸레질로 보낸 세월이 타오르는 몰입으로 돌아오지 않고, 무대 뒤편에서 흘려보낸 시간도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연기는 이미 배워서 오고, 무대 위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동생 손을 잡고 극단을 돌아다니던 엄마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다. 가끔 적기를 놓친다. 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뒹군다. 며칠간 엄마 손을 잡고 고생하던 동생에게 살며시 귀띔했다. 학원을 가는 게 낫겠다고. 며칠 뒤 엄마는 아침마다 시내 작은 상가 건물에 있는 연기 학원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동명의 연극을 본 것을 글로 쓰고 있다. 세영 언니 잡지에 실을 글이다.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작업실에서 지냈다. 그 발언 이후 엄마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만날 사람, 안 만날 사람 다 만나고 나니 세영 언니에게 “이번에 우리 잡지에서 새로 칼럼 코너 만드는데, 너 한번 안 해볼래?”하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기묘한 우연이었다. 나는 그저 엄마를 피할 요량으로 사람들을 만났던 것뿐인데, 어느새 ‘도영이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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