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필요
재현 윤리 따지며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총 제작 기간 2년, 책임감으로 완성

지난 16일 광주독립영화관에서 〈매미와 들개〉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GV를 끝낸 후 출연진과 감독진이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지난 16일 광주독립영화관에서 〈매미와 들개〉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GV를 끝낸 후 출연진과 감독진이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살면서 한 번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본 적 없던 구가연(철학·19)씨가 카메라를 집어 든 것은 한국인 원자폭탄(원폭) 피해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난 2019년 한국인 원폭 피해자 구술채록에 참여한 구씨는 그곳에서 광주지역 1세대 원폭 피해자 박용규(85)씨를 만났다. 그것을 계기로 구씨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매미와 들개>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는 “원폭 피해자 스스로조차 삶 속에서 트라우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고 있었다”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 원폭 피해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년에 걸쳐 제작된 다큐멘터리 <매미와 들개>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1세대인 박씨와 2세대 한정순(65)씨가 등장한다. 원폭 경험과 트라우마를 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촬영한 구씨. 그는 “원폭으로 인한 질병과 장애는 유전으로 대물림된다”며 “원폭 피해를 역사나 시사 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삶과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을 담는 연출자로서 어떻게 원폭 피해자의 삶을 풀어낼 것인지, 어디까지 담을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는 구씨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힘들었던 점으로 ‘책임감’을 꼽았다. 그는 “촬영한 장면이 우리가 찍고자 하는 취지에 맞는지, 재현 윤리를 따졌을 때 담아내도 괜찮은 장면인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임감이 구씨를 힘들게만 한 것은 아니다. 어려움에 부딪혀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을 때도 많았으나 그는 “오히려 책임감으로 인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매미와 들개〉 출연진인 원폭 피해자 1세대 박용규(85)씨, 2세대 한정순(65)씨, 감독 구가연(철학·19)씨
왼쪽부터 〈매미와 들개〉 출연진인 원폭 피해자 1세대 박용규(85)씨, 2세대 한정순(65)씨, 감독 구가연(철학·19)씨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도 않았고 관심받지도 못했다. 현재에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구씨는 “트라우마가 그리스어로 상처란 뜻이래, 나는 평생 그게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고 살았어”라는 다큐멘터리 속 박씨의 말을 인용해 원폭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밝혔다.

구씨는 다큐멘터리를 볼 학생들에게 “큰 의미를 찾기보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대로 감상하고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매미와 들개>는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다니며 원폭 피해자 당사자로서 오랫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박씨와 대구와 합천을 오가며 원폭 피해자 2세 환우쉼터인 ‘합천평화의집’을 지키고 있는 한씨의 삶을 담았다. 활동가인 한씨는 원폭 피해 특별법 등 20년간 1세대뿐만 아니라 후세대에 대한 인정과 보장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들을 함께 추모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미와 들개>는 우리 대학 재학생인 구씨와 졸업생인 박세은(철학·19)씨, 최연(철학·17)씨가 함께 제작했으며 지난 16일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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