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이름. 오랜만에 본 친구 얼굴이 미워진다. 그래도 이것만큼 우리를 아우르는 것은 없었다. 그것이 우리를 아우르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동명의 방은 3층에 위치했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넓은 창이 답답함을 조금 덜어주었다. 나는 창을 열고, 대기하던 바람을 우수수 맞아버렸다. 동명은 코트를 벗어 걸이에 걸곤,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맥주였다.

“한 잔 마셔.”

취이익. 거품이 쏟아진다. 한 모금 마시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열어놓은 창이 톡톡 떨렸다. 나한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의자를 두고 앉은 동명은 불현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근 선배가 쓴 평론 봤어?”

‘젊은 예술가에게 투영된 거장의 예술적 허영. 지루하고 얕은 바다에서 물장구치는 기분.’ 그는 나에게 자신의 연극을 보러오지 않겠냐며, 모 평론가의 악평을 함께 보내주었다. 그는 알게 모르게 신경 쓰고 있는 듯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의 악평이라 그런 것일까.

그는 내게 물었지만, 나는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정근 선배도 너무하다고 그의 우울을 위로할 자신도, 정근 선배 말이 맞다고 그의 상처를 쑤셔댈 용기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입술로 맥주 캔을 쓰다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침묵하는 그의 모습은 이런 나의 사정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동명이 맥주를 넘기는 소리는 유독 도드라졌다.

“실현이 곧 예술이다.”

동명의 약한 한숨과 함께 흘러나온 말은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작게 웃었다.

“그 말 진짜 오랜만이다.”

“교수님은 잘 지내시나... 그때가 좋았는데.”

이야기는 얇은 실처럼 나풀거렸다. 실들이 엉키면서 타래가 되었다. 우리는 그 타래 속으로, 옛날 괴팍했던 교수의 근황과 잘난 척하던 동기의 영화가 완전히 망해버렸다는 소식과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신작 얘기들을 집어넣어 가며 시간을 태웠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는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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