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로비 바닥에서 높지 않은 천장으로 뻗은 기둥의 개수를 세었다. 그늘에서 모습을 감추던 기둥에 시선이 이를 때쯤 한 남자가 가방을 고쳐 매며 다가왔다. 느려터진 남자의 걸음을 기다려 그와 마주하고, 생각했다. 이 얼굴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구나. 

"오랜만이야. 안 본 새 꾀죄죄해졌네. 흐흐흐."

마땅히 떠오르고 있어야 할 것을 알아챈 순간은 꽤나 감격스럽다. 그가 실실거리며 걸음을 질질 끌어댄다. 우리는 유리문을 열고 바람 섞인 찬 공기를 맞았다.

"이제 브로드웨이만 가면 되겠다."

내 말에 그는 수줍게 웃었다. 한동안 땅만 보며 걷다가 내 눈을 바라본 그는 슬프게 말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그의 말 속엔 만성적인 불안이 앉아있었다. 뻔뻔히 앉아 나를 바라보는 그 낯짝이 지겨워 그와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도, 이 녀석도 아주 힘들었을 테니까. 그래서 찾아오기 무서웠던 걸까. 연극을 보러와 주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고도 한 달간 마땅한 답장을 써 내리지 못했었다. 나 몰래 저 속의 불안들을 쫓아내고 멋지게 살고 있을까 봐 두려웠던 걸지도.

다행히도 동명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불안과 함께 밥도 먹고, 글도 쓰고, 작업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돌려막듯 외면했던 슬픔이 틈새를 비집어 운다. 극장을 나와 걷다 보니 공기를 가득 메운 습기가 느껴졌다. 빗방울도 섭섭지 않게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검은 우산 두 개가 약간 떨어진 채로 평행 이동했다.

"괜찮아? 요즘은?"

동명의 물음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나는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그에게 연기를 시작하겠다던 엄마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것을 들은 건지 눈을 번쩍 떴다가 다시 바닥을 바라보며 "걱정이 많겠네" 하고 내뱉었다.

"걱정은 무슨..."

바닥을 향하던 동명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머물다 내 위로 떨어졌다. 그는 입술을 옴질거렸다. 그런 그의 눈을 지긋이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걸음은 멈추어 있었다. 바람이 휘휘 소리를 내고, 이대로 엄마 얘기를 계속하다간 어설픈 한탄만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가 말했다.

"찬경 선배는 답을 알까? 지금 내 앞에 있다면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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