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전까지는 쓸 수 없다. 사랑해야만 한다. 나는 쓰기 위해 사랑한다.

엄마는 속초 겨울 바다를 걸었다. 바다였다가, 바다가 아니었다가, 바다인 곳을 걷는다. 파도가 운다. 얼은 줄 알았던 바다가 출렁거린다. 속초 바다는 얼지 않는다.

또 이곳에 왔네. 나는 자조하듯 말한다. 엄마의 겨울용 부츠에 바닷물이 닿는다. 바다와 모래사장이 만나는 하나의 선을 엄마는 본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본다. 차가워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지만, 그 순간에도 무언가는 움직이고 있다. 엄마는 선을 따라 경계를 횡단하다 나를 올려봤다. 나는 제방 위에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수많은 움직임이 지나가고 나는 해변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는 제방 아래서 나를 따랐다. 해변의 끝은 절벽이었다. 나는 탁자 위에서 턱을 괴듯 살아간다. 숨은 쉬지만 살아가지는 못하다. 차가운 바람을 마주하였는데도 그렇다. 잠이 깨지 않는 듯. 제방에서 내려가 엄마 옆에 섰다. 털장갑을 벗고 절벽을 만진다. 엄마는 절벽 앞에서 또 나름의 생각에 빠진 듯하다. 또 이곳에 왔구나. 바다도 오랜만이고, 이 기분도 오랜만이다. 차가운 바람이 사라지고, 답답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숨이 덥히고, 눈이 뜨였다. 내 방 천장이다.

같은 꿈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같은 일을 기록하는 것만큼 따분한 일은 없다. 그래도 나는 쓴다. 어딘가에 갇힌 것 같지만, 일기는 남겨야지. 동굴 속에서 나는 썼다. 꿈은 일종의 유랑이다.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징검다리 건너 떠돌아다닌다. 유랑은 아름답다. 살아간다는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수시로 바뀌는 배경에 나는 괴였다. 나만 죽어있다.

누군가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새 가구와 새 물건들이 묘한 냄새를 풍긴다. 밤을 지나오며 끈적한 땀을 떠나보낸 맨발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노트 위 연필처럼. 연필 소리는 나를 화장실로 인도했다.

오전 7시 27분. 작업실 안 나무 책상에 앉았다. 아침은 거르고 잠꼬대하듯 PC를 켜 흰 바탕과 마주했다. 커서가 깜빡거릴 때마다 달아오른 햇살에 살이 뜨거워지고 땀이 났다. 묘한 떨림과 두려움도 따라왔다. 아무 감정이 없다. 흰 바탕 앞의 나는 초라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글쓰기를 두려워했다. 꿈 일지는 잘만 써지더니.

엄마가 연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6개월 전의 일이었다. 평소와 같은 저녁 식사 도중 엄마는 말했다.

“나 이제 연기를 해야겠어. 배우가 될 거야.”

내가 말했다.

“연기가 장난이야?”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선언이 있고, 막 정년퇴직을 한 아빠는 조금씩 집안일을 배워갔다. 우리 집 거실 책장은 온갖 대본과 희곡집으로 채워졌다. 동생은 엄마 손을 잡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극단을 찾아갔다. 작디작은 4인 가정 안에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 말 한마디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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