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계급을 구분한다. 두 계급은 잉여생산물을 생산하고 착취하는 관계다. 그의 설명은 계급이라는 틀을 활용해 산업자본 형성에서 나타난 부조리를 설명하는 이론이었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산업 구조의 변화로 다양한 노동형태가 나타나면서 이론의 설명력은 약해진다. 특히나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법치국가 안에서 계급은 별 의미 없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계급은 과거의 유산이다. 그런데 정말 계급이 사라진 걸까?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신분제 사회처럼 드러난 계급은 없지만 여전히 은밀한 권력 관계가 곳곳에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 이 권력 구조를 ‘장’이라는 비유를 사용해 설명하는데 자기장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학창시절 과학 시간에 자석과 철가루를 활용해 자기장을 관찰하는 실험을 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철가루를 통해 시각화한 것이다. 일상 속에도 자기장과 유사한 힘의 구조가 있다.

가령 학교에서 쉬는 시간 교실 분위기는 뛰어난 말재주나 성적, 외모, 특정한 브랜드 상품 등 특출난 무언가를 가진 학생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간헐적으로 그 권력이 눈에 들어오는데, 알아채기 어려운 위계는 왕따나 학교 폭력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부각된다.

부르디외는 이런 위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문화자본’이라고 말한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학생의 언변, 성적을 결정하는 지식, 주의를 끄는 외모,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템 등이 문화자본에 속한다. 돈만 자본이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생각과 다르다. 그는 『구별짓기』에서 “경제학 이론은 기껏해야 구매력으로 환원된 소비자나, 모두 동일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기술적 기능을 갖고 있는 제품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라고 비판한다. 경제학은 생산과 소비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희소성 있고 가치 있는 취향도 그중 하나다. 고소득 전문직 사회인이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때로는 어떤 기호를 갖느냐가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최근 아이폰과 갤럭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 한 출연자가 갤럭시 비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이다. 세대에 따라 스마트폰 브랜드 비율에 차이가 나는데 40대 이상에서는 갤럭시가 10대, 20대에서는 아이폰 비중이 높다. 20대의 65%는 아이폰을 쓰고 특히나 여성층에서는 그 비율이 70%대까지 올라간다. 제품의 기능과 별개로 10대, 20대 집단 내에서 아이폰은 혁신과 감성, 고급 취향의 이미지를 지니며, 아이폰 유저는 일종의 상징권력을 가진다. 적어도 10대, 20대에서는 아이폰을 사용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아이폰에 목을 매는 이유다.

아이폰을 좋아하는 학생의 기호가 삐뚤어진 우월감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간은 구별짓기를 좋아하며 우월감과 권력 지향적 성향이 시시때때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대학은 위계적 공간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는 아무리 수평적 구도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균형추가 기운다. 가령 수업에서 많은 교수자가 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의 의견을 끌어내려 한다. 그러나 지식권력을 가진 교수의 말에 반대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고 반대의견을 내더라도 교수자가 그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학생들은 입을 닫게 된다. 자신의 태도가 토론 수업을 어렵게 하는 것인데도 학생 탓만 하는 경우다. 일상 속에 나타나는 위계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학생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선배와 후배뿐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도 위계가 있으며, 주의하지 않으면 쉽게 젊은 꼰대가 된다. 자신은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알량한 우월감과 편협한 구별짓기로 같이 있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 미디어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의 권력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일상 속 미시적 권력구조는 쉽게 잊혀진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반성적으로 보지 않으면 어느새 기피 대상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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