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 봄의 끝자락, 영화 <스프린터>를 보러 충장로의 광주극장에 다녀왔다. 광주극장 특유의 어두침침하고 작은 스크린 너머에서 만난 것은 자꾸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일어나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었다. 여름의 초입에서, 나는 실패하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스프린터는 육상이나 수영에서 단거리 선수를 이르는 말인데, 영화 속 스프린터는 총 3명이다. 과거 유망주였으나 슬럼프를 겪고 이젠 육상부 해체의 위기에 선 ‘준서’와 수단을 가리지 않고 1위의 자리에 섰지만 도핑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호’. 그리고 신기록 보유자이나 이젠 은퇴만을 앞둔 전 육상 국가대표 ‘현수’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이들은 마치 한 사람이 10대에서 30대에 이르며 겪는 듯한 좌절과 극복의 여정을 한 영화 속에서 보여준다.

준서와 정호, 현수는 각기 다른 좌절을 겪는다. 아이처럼 엉엉 울기도 하고, 모든 것이 수포가 되는 모습 등 영화 속에서 수많은 좌절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영화는 실패만을 보여주고 끝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좌절을 겪고 나서, 그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 달리기로 했는가였다.

도자기 공예 기법 중에는 ‘킨츠기’라는 것이 있다. 깨진 도자기 틈새를 천연재료인 옻으로 메꾼 후 금 등으로 장식해 수선하는 일본 전통 기법이다. 킨츠기의 목적은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그릇으로의 복구가 아니다. 깨져버린 그릇이라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발굴해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사람이 겪는 좌절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에 금이 가도 넘어지는 순간에 멈추지 않고 일어나려 다짐한다면 우리는 더 새롭게, 더 아름답게 다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실패를 겪어본 이가 좋다. 깨지고 다시 붙은 그릇처럼, 좌절에서 일어나고자 결심한 사람이 붙잡고 나아갔을 희망의 흔적이 남은 것을 발견할 때면 나는 또 속절없이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들이 다시 일어나기까지 흘린 눈물과 들인 노력, 가슴 깊이 묻었을 여러 슬픔을 모두 샅샅이 발견해내고 싶다. 그것들을 마주 끌어안을 때면 미처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내 안의 좌절과 상처들도 치유받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긴 인생 속에서 짧은 순간 반짝이지만, 침전하는 순간에도 끝없이 달리며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스프린터들이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이 마음이 깨지고 다쳐도, 희망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도 앞서 남겨진 희망의 흔적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단 번의 좌절에 추락하지 않고 계속 달리리라 결심한다면 우리는 어느새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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