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남대 인문대학 소식지(2023학년도 제1호)에 실린 박훈(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글에 대한 논평이다. “『전라도 천년사』 논쟁’을 지켜보며”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박 교수는 『전라도 천년사』 편찬사업에 대하여 시민사회가 제기한 비판을 격렬하게 논박하고 있다. 편찬위원회 측의 입장만 이 소식지에 공표됨으로써, 양측에 공정한 균형감을 상실한 문제점을 주목하여 이 글을 표하는 바이다.

첫째, 지나친 감정표현과 상충하는 논리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팩트의 오류와 논리의 허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시민사회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얘기만 한다” “전문가 집단이 확정한 사실도 대중감정에 반하는 것이라면 즉각 도전한다” “전문가가 비전문가와 논쟁하는 것만큼 어렵고 무의미한 일도 없다”는 등의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아무리’ ‘대중감정’ ‘무의미’ 등의 용어 사용은 정제되어야 할 어법임을 지적할 만하다. 그리고 전문가만이 그 적합성을 확정한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의 비판은 역사 발전에서 필요하고도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이 필자의 인식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고 전문가의 독점물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더 나아가 전문가의 글이 국가와 민족을 배반한 식민사학의 사슬에 얽혀있다면, 그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박훈 교수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박 교수의 다음 표현에서도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전라도 천년사』를 집필한 학자들이 상대측 패널들을 향해 성심성의껏 설명하고 있다. “나는 보면서도 화가 나던데 (학자들은) 용케도 점잖은 태도를 잃지 않고 토론에 임하고들 계셨다. 경의를 표하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쓰여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쟁론 과정에서 편찬위원(집필자)들이 보여준 저열한 도덕성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테면, 집필자들이 국회의원실을 찾아가서 자기의 집필 내용은 옳고 시민사회의 비판이 잘못이라고 설명하고 다닌다는 것은 집필자(용역수행자)의 기본 도덕을 넘어서는 행위이다. 또한 편찬위원회가 2022년 말에 책을 이미 인쇄해놓고도, 이를 말하지 않고 있다가 2023년 7월 25일 토론회에서 부지불식간에 인쇄 사실을 토설했다는 점은 진실을 숨긴 일종의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필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검증 결과를 반영하여 수정된 최종 결과물을 보게 될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이 전문가 집단의 용역수행 자세에서도 빈곤한 연구 윤리를 지적할 수 있다. 대중을 위한 관찬사서를 집필할 경우에 당연히 거쳐야 할 시민공청회도 없었다. 공개검증 과정에서 질문된 150여 건의 문제점과 이의제기 내용에 대하여 절차와 내용 및 처리방안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행정사무조사도 최후까지 회피해왔다. 편찬위원장을 비롯하여 주요 집필자들은 공적인 담론공간인 국회 국정감사 또는 토론회에서 허위 증언을 자행하기도 했다. 위증 사실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박 교수는 과연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는지 묻고 싶다. 그는 집필자들은 오류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편찬위원회 부위원장 스스로가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했고, 그것을 시정했다고 언명한 바 있음을 지적해 둔다.

끝으로 박 교수가 강조하는 ‘팩트(사실)’중심의 실증주의 역사인식에 관련하여 첨언하려 한다. 연구 활동을 두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본다면, 연구주제 선정의 수준과 선택된 연구주제에 관련된 구체적 사실자료(팩트) 수집의 수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박 교수가 말미에 언급한 ‘민족주의 사관’은 첫 번째 수준과 관련되고, 앞부분에서 시민사회를 비판하며 설명한 부분은 두 번째 수준인 실증(주의)사학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거두절미하여 말하면, 랑케의 실증사학이란 당시 헤겔의 정신사에 대응하는 학문 특성을 강조한 표현이며, 랑케 역시 게르만 민족애를 품고 있던 인간이었음을 지적해 둔다. 흔히 실증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은 대체로 보편사의 가면을 쓰고 제국주의의 논지에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역사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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