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지쳐버린 발걸음을 이끌어 이리갔다 저리갔다... 그냥 이것이 인생이라고 체념하는 게, 바로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게 철이 든다는 것이고 비로소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비몽사몽 교복을 입고 아빠 차를 타고 설익은 햇살을 받은 아빠의 옆모습을 볼 때, 일을 마치고 장바구니에 저녁거리를 습관처럼 담던 엄마의 오래된 손을 볼 때, 외면하고 싶은 거울 속 나를 볼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많은 해를 산 것은 아니다. 고작 스물 하나다. 바람 없이 잔잔히. 실바람만 몇 차례 만난 스믈 하나의 나는 그와 다르다. 세상은 가도가도 새롭기만 하드라. 많은 것을 뉘우치고 스치어도 나의 이마엔 평생 시의 이슬이 맺히지 않았다. 피는 단단한 거죽에 가로 막혔다. 병아리처럼 삐약거렸다. 삐약삐약. 비참한 줄로만 알았다.

불행을 천금으로, 편안을 재앙으로. 나는 그리 생각했다. 불행이 쏟아지는 삶을 동경했다. 왜 바람은 멎었는가. 아주 어릴 땐 꽤나 고통스러웠던 것 같은데. 미당의 자화상은 그런 나에게 예술가의 표상으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선임자의 그림자로 보였다. 어리광이었을까.

한동안 그리 살았다. 우연한 기회에 이 시를 마주했을 때도 변화는 없었다. 어느새 소년의 형상은 많이 자라 그 누구도 소년이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년이기를 바랐다. 피터팬이 되고 싶었다. 그럴수록 거울은 멀어졌다. 나를 가리키는 렌즈도 무서워 피해 다녔다.

그래도 아침은 찬란히 티워오고, 여러 해 스친 아침에 병아리는 어느새 영계가 되었다.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걸음은 놓였다. 막연히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되고,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냥’이라는 단어 아래 놓여있던 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글감은 고통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더라.

‘애비는 회사원이었다. 밖이 어스름해지면 꼬박 집으로 들어왔다.
어매는 달을 배고 열대야를 보냈다.
전셋집 흰 벽 밑에 얼굴이 까만 에미의 아들.
나 태어나기 전 떠났다는 외할아버지의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나 태어난 달의 바람이 분다. 트인 벌판에 내가 서 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이 차다. 너는 너를 본 적 있는가. 나는 나를 본 적 있을까. 결국 ‘나’ 한 번 보려고 살아가는 거 아닐까.

언젠가부터 내 방엔 작은 탁상 거울이 하나 놓여 있다. 잠에서 덜 깨 찌뿌둥한 얼굴. 씻고 나와 축축한 얼굴. 먼지 맞고 꾀죄죄한 얼굴. 노을에 노곤해진 얼굴. 저녁 먹고 입가에 양념 묻은 얼굴. 마지막으로 하루를 떠나보내는 얼굴까지. 나는 모두 본다. 얼굴과 그 속의 나를. 나는 언제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까. 어른이 되련가.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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