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는 취재는 힘들다. 이는 말 그대로 직접 돌아다녀야 하는 취재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곳저곳에 끊임없이 연락하고 질문해야 하는 취재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대학가 주변 음식점 취재, 학내 게시판 관리 점검, 학내 대형 강연장 단상 경사로 점검 등 실태를 파악해야 하는 취재들이 그러했다. 필자는 실제로 10곳 이상의 인근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취재했고, 부동산을 돌았다. 게시판 관리 점검 기획을 취재하며 다른 기자들과 학내 단과대 건물 전체를 돌아보기도 했다. 취재하러 가는 발걸음이 때때로 무거웠던 이유는, 체력과 별개로 존재했다. 이는 학생 기자에 대한 취재원들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거 다 그냥 지면 채우려고 대충 하는 거 아니에요?” “도대체 왜 취재하는 거에요?” <전대신문> 내에서 취재원들의 불친절은 일상이다. 특히 학내 교직원들이 그렇다. 이번 호에서는 학내 대형 강연장 단상 경사로 점검 기획을 진행했다. 학내 강연장들을 돌아보고, 행정실 담당자들을 취재했다. 느낀 것은 기자 그리고 취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이 거부감이나 불편함은 모두 뜬금없었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경사로를 마련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넌지시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그런 식으로 취재하지 마세요”였다. ‘그런 식’이라고 표현할 만큼 잘못된 방식으로 취재했었던가? 아니, 없었다. 그러나 교직원은 내게 반복해서 “그런 식으로 하지 마라. 취재하지 말라”고 말했다. 맥락도 근거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이 기자에게 친절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불친절을 모두 수용해야 할 이유도 기자에겐 없다. 매 호, 매 기사에서 그렇듯 학내 소식을 전하고, 비판적으로 문제들을 바라보며 더 나은 어떤 것을 위해 보도할 뿐이다. 도서관 개방 시간을 늘려달라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계획을 묻는다.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학내 벤치가 부러져 있으면 고쳐 달라고 요구한다. 기자이기에 하는 일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도, 누군가의 일방적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도 기자의 역량을 판단할 수는 없다. 기자는 기사가 증명한다. 무엇을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전대신문>의 기자라는 것. 그것은 내가 취재하고 보도한 기사들이 증명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마저도 보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겠다. 그 무엇도 아닌 기사 한 줄이 기자를 만든다면, 그 한 줄을 위해 더 열심히 발로 뛰고, 보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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