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올해 8월 15일에 열린 광복절 78주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의 한 대목이다. 이어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입니다.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가치를 거듭해서 강조했지만 필자는 국가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느꼈다. 독재 정권을 정당화하고 국민을 억압했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고개를 치켜세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 이름들은 우리의 역사에서 삭제되었으며 민주화 운동가들은 소위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국가에 의한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표면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는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정당화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독재 권력의 안녕을 위해 국민을 기만한 장치였다. 민주화 운동시대를 거치며 독재 정치가 불식되고 반공주의의 논리에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이 복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반공주의를 악용하고 있다. 최근 광주에서도 반공 이데올로기의 건재함을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이 있다.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다.

광주시는 현재 동구에 정율성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인 정율성의 생가 주변에 마련되고 있는 기념공원은 문재인 정권 때부터 오랜 시간 계획된 공공사업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때아닌 반공 이데올로기 논쟁에 휩싸였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자신의 SNS에 “정율성은 공산군 응원대장이다”며 광주시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잠잠했던 광주 내부에서도 반발의 의견이 하나둘씩 불거지고 있다. 호남 출신 지식인이 결성한 호남대안포럼은 8월 24일자 <조선일보>의 ‘정율성 공원 조성은 5·18 정신 먹칠 호남 지식인들도 반발’ 기사에서 역사공원 조성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전국학생수호연합과 전몰군경유족회가 반대운동에 참여하여 공원 조성 현장 인근에서 소규모 반대집회까지 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정권에서는 무리 없이 통과된 공공사업을 하루아침에 5·18정신을 훼손하는 반민주주의 행위로 손쉽게 낙인찍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정의와 사회통합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조금이라도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빨갱이’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는 현 정부의 국정 기조가 과연 국민통합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법치주의와 기묘하게 결합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수단 삼아 독립운동의 역사와 지역의 예술적 자산을 폐기하고 시민사회의 건강한 비판마저도 침묵 속에 묻어버리려 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우리는 이러한 불합리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것임을 믿는다. 그렇기에 앞서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역사를 폐기하고 시민들의 입을 막고 자유로운 소통을 금지하는 저 반공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통합을 강조하는 반공주의가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고통스럽게 깨달아야만 하는 순간이 지금 도래했다.

정찬혁(철학과 박사과정)
정찬혁(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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