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이규식, 22년 장애인 이동권 운동 기록
"우리의 싸움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이 하나의 대답 될지도"
시설과 집 오가며 ‘삭제된 10년’
휠체어 추락 사고 후 본격적인 활동가로
장애인이 자립하기 가장 좋은 때? "바로 지금"

이규식씨가 지난 6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규식씨가 지난 6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 똑 떨어졌다. 확 고꾸라져서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바닥에 박은 이마가 뜨거워지며 기억이 사라졌다.”

1999년 6월. 지하철 승강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혜화역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전동스쿠터와 함께 갑작스레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운이 나빠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그가 속한 노들 장애인 야간학교(노들야학)는 그를 대신해서 서울교통공사와 싸웠다. 그 결과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지만 사고 배상금을 지급받았고 혜화역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양방향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이 싸움을 지켜보며 나의 목소리를,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장애인운동 활동가가 되었다. 바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는 이규식(53)씨다.

김형진 활동지원사가 이규식씨의 말을 청중들이 볼 수 있게 자막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형진 활동지원사가 이규식씨의 말을 청중들이 볼 수 있게 자막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이규식의 세상속으로: 나의 이동권 이야기> 북콘서트에 약 80여명의 참석자가 모였다. 이씨는 김형진 활동지원사,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김소영 장애인지원주택 코디네이터와 함께 지난 3월 ‘장애인 인권 운동의 역사’이기도 한 자신의 생애를 책으로 출간했다. 이씨가 말을 하면 세 사람이 옮겨 적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중증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낸 첫 책이다.

1998년, 29세의 나이로 노들야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씨는 장애인거주시설과 집을 오가며 살았다.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정해진 일과를 따르는 시설 생활은 안전하지만 자유가 없었다. 그는 이때의 시간을 ‘삭제된 10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직은 지역사회가 장애인이 살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조금 더 탄탄한 복지 체계가 만들어지면 그때 자립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럼 자립하기 좋은 때는 언제일까? 내년? 10년 뒤? 아니면 내가 죽고 나서? 나는 장애인이 자립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복지 체계가 만들어지길 기다리면 죽어도 자립 못 한다. 지금은 활동지원사도 있고, 자립 주택도 있고, 자립을 뒷받침하는 여러 제도도 존재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립을 도전할 만하지 않을까?”(69쪽)

10년간의 시설 생활이 막을 내리고 그는 그리움과 심심한 마음을 달래려 전동스쿠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오르막길을 오르던 이씨는 장애인 여러 명이 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따라 들어간 곳이 노들야학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장애인 이규식이 아닌 인간 이규식으로 바라봐 주는 비장애인들을 처음 만났다. 대화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다. 이후 노들야학에서 교장을 맡고 있던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의 제안으로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동권연대)의 투쟁국장을 맡아 수많은 투쟁을 했다. 어느새 붙여진 별명은 투쟁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의 ‘투모사’였다.

책을 쓰고 북콘서트를 열 때 이씨와 함께한 동료들이 있다. 책의 공동 저자이며 10년간 이씨 곁에서 함께한 김형진 활동지원사는 “처음에는 책을 쓰는 일인데 전문가가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투쟁과 회의로 바빴고 집필 활동은 단순 타이핑 작업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옆에서 활동지원사로 일한 저야말로 이규식 전문가란 생각이 들어서 계속 썼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박상규 셜록 대표기자, 이규식씨, 김미숙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사무국장.
왼쪽부터 박상규 셜록 대표기자, 이규식씨, 김미숙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사무국장.

장애인이 마이크를 쥘 기회를 주는 곳도 적었다. 전국의 많은 무대에는 단상이 있고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다.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기자는 “전국 순회 북 콘서트를 통해 강연장 단상부터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었다”고 밝혔다.

이야기 손님으로 북 콘서트에 참가한 김미숙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이 왜 이렇게까지 싸우는지 알 수 있는 책”이라며 “특히나 저와 같은 젊은 운동가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광주 북 콘서트는 <셜록>과 오방장애인자립센터가 공동 주최했으며 전국 순회 북 콘서트 중 첫 번째 순서다. 이규식 전국 순회 북 콘서트는 부산, 울산, 강릉 등이 예정되어 있으며 아직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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