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보고서를 통해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는 한 국가의 정치 환경을 ‘선거 과정과 다원성’ ‘정부의 기능’ ‘정치적 참여’ ‘정치문화’ ‘시민적 자유’ 다섯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그 결과를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결함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혼합체제’(hybrid regime)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로 구분한다.

2015년 5.55까지 올랐던 세계의 민주주의 지수는 2022년 5.29로 추락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8.22에서 2022년 7.85로 하락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강등되는 충격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2021년 8.16에서 2022년 8.03으로 민주주의 후퇴해 겨우 ‘완전한 민주주의’ 지위를 유지했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공신력 있는 비정부기구다. 이 기구는 매년 세계 자유 지수(Global Freedom Score)를 발표하는데 2023년 보고서는 17년째 세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민주화 물결로 확산된 민주주의가 2005년 이후 후퇴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매년 자유 지수가 증가한 국가보다 감소한 국가의 수가 많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제3의 물결』에서 세 차례에 걸친 민주화 물결(1828~1926, 1943~1962, 1975~)과 민주화 물결 이후 나타난 두 번의 역물결을 분석한다. 1991년에 출판된 책에서 저자는 세 번째 민주화 물결이 진행되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헌팅턴의 설명을 활용해 뤼어만(Anna Lührmann)은 최근의 민주주의 후퇴를 ‘세 번째 권위주의화 물결’(A third wave of autocratization)이라고 부른다. 이번 역물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쿠데타와 같은 특별한 계기 없이 미묘하게 표현의 자유, 정치적 참여를 제약함으로써 점진적으로 권위주의화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2016년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민주주의 쇠퇴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여기에 더해 헝가리,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포퓰리즘 정당의 강세는 정치제도와 문화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의회와 사법부를 매수해 견제와 균형 장치를 망가뜨리고 권력을 획득한 후 경쟁자와 언론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자들의 사례는 법과 제도만으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는 점 시사한다.

이들은 제도가 아닌 관습과 규범이 민주주의 수호에서 중요하며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상호 관용’은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에게도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이고, ‘제도적 자제’는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다.

이 내용은 멀리 갈 것 없이 딱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강성지지자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정치인들은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혹은 지지세를 잃을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상호관용의 부재 상태다.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과 검찰을 동원하고, 야당은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활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제도적 자제가 사라진 상황이다.

프리덤 하우스의 2023년 보고서에서 북한은 100점 만점의 자유 지수에서 3점을 받았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자유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 나라의 국명에 ‘민주주의’가 포함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반자유주의 국가로 낙인찍힌 러시아는 선거를 통해 두마(국회) 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한다. 러시아에는 공정한 선거제도가 존재하고 야당의 존재도 확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러시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켜진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과 제도는 큰 의미가 없다.

독재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제도의 변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지나면 민주주의 수준은 제도가 아닌 시민 공동체와 정치문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해서 이제 우리 사회가 제도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보다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 고민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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