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뜨거운 태양과 더욱 뜨거운 내 기말 리포트를 등지고 예대 근처를 방황했다. 별생각 없이 들어간 중고 서점에서 홀린 듯이 한 권의 오래된 시집을 집어 들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1975년에 발표된 동명의 시를 선두로 하여 창작과비평사에서 1982년 출판한 김지하 시인의 자선 서정시 모음이다. 단순 서정시로 소개는 하고 있지만 읽어보면 참여시와 민중시의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1960년대 대학생이었던 김지하 시인은 4·19를 시작으로 여러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이후 도피 생활과 수감 생활을 겪고 대학 졸업 후 풍자시 <오적>을 발표하여 필화를 입고 수감 후 석방,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까지 선고받았다가 석방되었다. 1975년 발표한 <타는 목마름으로>는 호소력 짙은 분노와 슬픔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당시 민중들을 사로잡았고, 1980년대에는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민중가요가 되었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여느 시보다 충격적이었다. 김지하 시인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강렬한 분노를 가장 처연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시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이 읽는 이의 목구멍 깊은 곳까지 전염된다. 행이 지나고 연이 지날수록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점차 떨려간다. 이는 민주주의를 향해 열망하는 심장과 마음껏 목 놓아 부를 수 없는 현실 양쪽 모두 때문이리라. 초신성을 갈망하는 볼프-레예. 차오르는 분노와 구슬픈 소음이 만들어 내는 어색한 침묵과 공포가 이 시를 사회에 대한 호소에서 민중을 울린 문학으로 승격시킨다.

<타는 목마름으로> 뿐만 아니라 수록된 다른 시들 또한 모두 읽어봄 직하다. <西大門 101번지>에서 화자는 ‘수리떼 떠도는 초겨울의 옛 戰場’에서 자연의 생멸을 온몸으로 느끼며 대지에 보습을 박는다. 서대문 101번지는 서대문 형무소의 주소이다. 고통과 분노의 한가운데 형무소에서의 순간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화자는 '타는 목마름으로'의 숨죽인 흐느낌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기고하며 '1991년 5월 분신 투쟁'에 대하여 운동권 세력들이 자살을 조장하고 있다는 맹렬한 비판을 한다. 후에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였다고 해명을 하나 결국 노태우 정권이 운동권에서 여론을 되찾아오는 방아쇠가 되어 진보권에 공격당한다. 현대에 와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칼럼에 대한 반응은 조금 갈리지만 그 이후에도 있었던 많은 논란과 행적들을 보았을 때 그가 앞장서서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참여 시인의 모습을 후기에도 가지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의 정치적 행보와 문학을 분리해서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변한 것은 비단 그뿐이 아니다. 우리는 그토록 어렵게 쟁취해낸 민주주의를 잘 수호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타는 목마름으로 새겼던 민주주의를, 우리는 어째서 애써 눈 돌리고 있는 것인가. 이 소중하고 귀한 아이를 어째서 방치하는 것인가. 그저 속이 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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