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보장법과 사회복지법을 연구하고 있다. 흔한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로 ‘상병수당’이 있다. 영어로 Sickpay, ‘아픔+돈’이라고 한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아파서 근무를 하지 못할 때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물론 독자들도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그런 제도가 없다. 있었으면 ‘열나게’ 열심히, ‘열날 때’ 더욱 열심히 출퇴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만이 OECD 나라들 중 유일하게 아파도 쉬지 못한다. 소중한 휴가(vacation)를 병가(sick leave)로 쓸 뿐이다. 근로자는 여가 시간에 아파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헬조선’이 아닌 ‘복지천국’ 네덜란드에서 왔기 때문에 이 대조를 더욱 날카롭게 느꼈다. 네덜란드에서 근무한 적이 있지만 아파서 결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프면 아침에 상사에게 전화 한 통으로 소득에 대한 걱정 없이 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는 했다. 상병수당의 전제가 안정감을 주는 거라면, 그것의 부재는 불안감을 준다. 그래서 마치 악마가 쫓아오는 것처럼 바쁘게, 급하게 사는 한국인의 마음을 더욱 이해해왔다. 헬조선에서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자유, 즉 ‘쉴 권리’의 보장이 없다.

1913년부터 네덜란드 ‘쉴 보장’의 역사적 뿌리를 살펴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부의 태도였다. 네덜란드 정부는 1930년까지 국회에서 상병수당의 입법을 주장하고 있었다. 정부 측 주장은 실용적이면서도 참 이상주의적이었다. 정부는 임신과 출산도 ‘상병’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출산휴가를 도입하길 원했다. 안타깝게도 1913년부터 17년 동안 보수 측은 ‘도덕적 이유 때문에’ 미혼 여자에 상병수당을 주면 안 된다고 고집했고, 진보 측은 미혼모를 사회의 천더기로 삼으면 안 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정부는 또한 ‘상병(傷病) 간 차별’을 피하고 싶어 했다. 왜 상병에 걸렸는지, 업무외의 연관성 여부 등이 아닌 사회적 결과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어떤 상병 때문이든 근로자가 아파서 일을 못 해 소득이 없는 상황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한국 정부의 태도는 달랐다. 한국의 주요 사회보장법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정권기 때 제정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한국은 아파도 쉬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것 같기도 하다. 1965년 박정희는 “비생산적인 생각이나 관습을 일신하고 모든 문제의 판단기준을 생산력 증가로 귀일”시킬 것을 선언했다. 쉬고 있으면 생산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니 먹지도 말라는 말이다. 지금의 한국은 마치 권위주의 시대의 악마가 쫓아오는 것처럼 과거를 되돌아보지 못하며 계속 앞으로만 뛰고 있다. 아파도 일해서, 아파도 생산해서, 아파도 앞으로 가야 하니까 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이.

물론, 쉴 보장의 부재는 법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도 한다. 필자는 (잠자는 것을 포함하여) 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왔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에서 밤새도록 공부하는 것과 야근하는 것을 미화(美化)하는 장면을 보면 불편하다. 드라마는 피곤해도, 아파도, 쉬면 안 된다는 메시지(프로파간다)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아이를 밤새도록 공부시키는 것은 네덜란드 기준으로 아동학대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쉬고 있는 사람은 게으르다는 남의 시선 때문에 오히려 불안해진다. 그래서 바쁜 척을 한다.

한국도 이제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작년 한국 정부가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아플 때 쉴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있는 모습이다. 필자가 네덜란드 제도를 연구하면서 특히 공유하고 싶은 시사점 하나가 있다. 요새 직장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더욱 힘들다. 상병수당은 고도한 스트레스 등 정신적 문제로 인해 잠시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지급할 필요가 있다. 감정노동은 ‘감정’을 아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도마(Thomas C. Adriaenssens,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박사수료)
하도마(Thomas C. Adriaenssens,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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