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자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거리 두기 문자가 수시로 왔던 때는 지나갔고, 오히려 거리 두기와 책상 가림막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필자는 22학번으로 1학년 1학기 때는 비대면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2학기가 되면서 체육대회나 축제 등의 활동이 이뤄지며 코로나로 대학 생활이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1면의 ‘코시국’이라는 단어를 보며 ’또 코로나 이야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사 내용을 읽어보고 난 후 코시국에 대학을 다녔을 선배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비대면 수업이 처음인 사람들, 실습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신 사람 등 코시국엔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그 흉터의 기록이 1면의 기사라고 생각한다. 흉터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주하여 우리 학교 구성원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의미 있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또한, 고학번은 아직 낯선 게 많다는 것을 이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다른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읽게 되어 뜻깊었고, 코시국을 겪지 않은 23학번들에게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기사가 될 것이다. 

지역 생태공원, 동물원 르포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줬다. 생태공원과 동물원에 방문한 사람들도 갇혀있는 동물들에 안쓰러움과 불편함을 느꼈다는 인터뷰를 읽으며 공감이 됐다. 다 녹슨 철조망 안에 있는 재규어 사진은 기자가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현실을 여실히 담았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환경에서 원하지 않은 시선을 받는 재규어의 모습에 동물원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오로지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에 동물들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말에서도 알 수 있었다. 

기사의 주제와는 별개로 이 르포가 재밌었던 점은 지나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것이다. 인터뷰 요청을 통해 하는 말보다 날것의 말이기에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더 잘 느껴졌다. 짠해서 나중에 다시 못 오겠다는 행인의 말은 5년 전 수학여행으로 동물원에 갔을 때 들었던 필자의 생각과 비슷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회의감도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여 기사로 담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읽으며 동물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고 동물원이 잘못됐다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학번도, 철장 안 동물들도 당사자가 아니라면 관심 갖지 않을 사건이다. 이런 곳에 귀 기울이고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전대신문>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이러한 관심과 의미 있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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