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썬 영화 포스터.
애프터 썬 영화 포스터.

새 학기 캠퍼스는 학기를 시작하는 이들로 분주하다. 학기의 끄트머리에는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고민하며 그해의 여름 혹은 겨울을 보내곤 한다. 영화 ‘애프터썬’은 딸이 아버지와 떠난 튀르키예 여행을 캠코더로 다시 꺼내 보는 내용이다. 

영화의 중반까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빠와 딸이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나며 수영하고 파티를 즐기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후에는 차마 알지 못했던 아빠와 딸 서로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평소 엄마와 지내며 아빠와는 서먹한 딸이 심적으로 멀면서도 가장 가까워지고픈 존재가 ‘아빠’가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푸른 물속’은 공기로 가득 채워진 일상에서 서로 그리워하는 존재를 그나마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역시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부모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얹어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각자의 일상을 위해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며 장난을 치는 어린 시절을 영상으로 추억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 낡은 기록이 분명히 채워줬으리라. 출국장에서 인사치레처럼 나눈 말들에는 서로 그리워할 마음과 사랑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서는 길에 삼 남매를 힘겹게 이끌고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던 부모님이 생각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요즘 익숙한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날 일이 많아졌다. 이따금 낯선 곳에서 가까운 이와 일상을 보내는 일은 어쩌면 낯선 이와 부딪히는 일보다 더 두렵고 걱정이 되는 일이다. 종종 나서는 엄마와의 산책에서도 내가 미처 몰랐던 엄마의 면면을 살필 수 있을 때가 많다. 어쩌면 엄마는 나에게 엄마로서만 존재했기에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들여다보면 먼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로 맺어진 이 인연이 무엇이길래 존재의 시작부터 사랑만 받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도 왜 가끔은 가장 먼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겨울방학 사늘했던 광주극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에서 보았던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과 청량하게 빛나는 바다는 어린 시절 떠났던 여름날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 떠날 채비를 하고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좌충우돌 해프닝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활력이자 애정을 잔뜩 받았던 추억을 남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여행지에서 남겨준 두꺼운 앨범 속 필름 사진을 보고 또 보아도 기분이 남다른 것은 그 사랑과 더불어 지난날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서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셀 수 없이 많은 잣대로 평가받으며 그러한 삶에 익숙해지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건조한 일상에서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남은 사랑이 그리운 이들, 그리고 따사로운 여름날의 추억을 기다리는 이들과 이 영화가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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