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청이 1999년 광주국제교류센터를 민간단체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저는 영문과 교수라는 죄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원 활동으로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교육과 연구, 단체 운영까지 책임지면서 어려운 일이 많지만, 광주 시민들의 공감 능력에 깊은 감동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 지진 피해 지역 돕기 모금도 그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직후인 2월 8일부터 국제구호 사각지대에 놓인 시리아를 지원하기로 하고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시리아는 지난 2011년 이래 알아사드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과 정부군의 내전으로 구호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시리아 ‘시민 방위대(하얀 헬멧)’와 국제개발협력단체인 '더프라미스'와 협력이 가능해서 이 두 단체에 성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모금이 시작되자마자 많은 분들이 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회원은 남편과 함께 피해자의 고통이 시작된 날을 기억하겠다고 각각 1,023,206원을 기부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온 가족이 기부에 참여했습니다. 광주광역시 의회 의원과 직원들은 시리아 지원에 공감해서 꽤 많은 모금액 전체를 교류센터로 보내서 크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2주 동안 모금한 결과 광주국제교류센터 직원, 내외국인 회원 및 광주 시민 총 205명이 성금 모금에 참여해서 16,898,912원을 모았고, 이를 둘로 나눠서 ‘하얀 헬멧’과 ‘더프라미스’에 보냈습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부터 어려울 때마다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임시정부가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도 연합국의 승리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제주 4·3 때에는 수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밀항했고, 6·25 전쟁 때에도 난민으로 또는 이민으로 외국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광주 역시 빚진 도시입니다. “5·18 광주항쟁의 고난이 없었으면 한국의 민주주의도 없었다”고 하면서 광주에 빚진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할 때, 광주는 한국의 다른 지역과 외국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광주항쟁이 이만큼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동안 진상 규명을 주장하면서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고, 국내외에서 광주항쟁을 지원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힌츠페터 기자, 슈나이스 목사 부부, 헌틀리 목사 부부 같은 분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동안 한국 특히 광주 사람들은 군부 독재의 압제에 항거하는 미얀마 사람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지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자 돕기 운동을 펼친 것도 그런 빚 갚기 운동입니다.

신경구(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신경구(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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