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과 국회의원의 표결에는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파급력이 있다. 그래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대통령실이나 국회를 떠올린다. 그곳에서 법이 제정되고 집행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

앞 문장의 표현에도 드러나듯 은연중에 권력은 소유물로 비유된다. ‘권력을 갖는다’는 표현에는 특정 개인이 권력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권력을 휘두른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야구 방망이나 회초리에 빗댄 은유인데, 그 표현에는 권력자가 손에 권력을 쥘 수 있고, 권력을 활용해 누군가를 압박하거나 타격할 수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이들 표현 속에서 권력은 일종의 물건이다.

그런데 권력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도 가능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을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인 효과”라고 표현한다. 권력이 소유물이 아니라 일종의 효과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로 푸코는 판옵티콘(Panopticon)을 든다. 판옵티콘은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범죄자의 효율적인 수감·교화를 위해 설계한 감옥이다. 원형 감옥의 한 가운데 감시탑이 있어 감시자는 모든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수감자는 감시자가 있든 없든 감시당하고 있다고 의식할 수밖에 없다. 푸코는 판옵티콘이 건축 장치를 통해 권력 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전형적 구조라고 소개한다.

일상에서도 유사한 권력 장치들을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대형 강의실의 좌석은 정면을 향해있고, 교수자는 높은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한다. 이런 장치는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강사에게 주목하게 만들고, 강사의 말에 권위를 부여한다. 강사가 학생 모두를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위치라는 것도 중요하다. 강사의 시선은 딴짓하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강의실의 여러 장치들은 물리적 차이를 심리적 차이로 전환시키는 전형적인 전략을 보여준다.

이런 전략은 업무공간에서도 관찰된다. 일반적인 사무실에서 팀장은 창가에 앉고 팀원들의 자리는 팀장의 시야가 닿는 정면에 나란히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리를 배열하면 한편으로는 팀장이 업무 과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팀원이 팀장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권력은 강의실과 사무실 같은 일상 속에 암묵적이고 미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교실에서 원형 테이블을 사용하고, 기업에서 자율좌석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기존의 권력 구도에 변화를 줌으로써 보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교사나 팀장 개인이 탈권위적이라고 해서 학교와 회사에서 창발성이 샘솟지는 않는다. 결국 환경과 구조 속에 스며든 권력 관계를 변화시켜야만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권력을 이해하기 위해 숨겨진 구조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입부에서 언급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권력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그들의 말과 행동에 주목한다. 그런데 권력을 개인의 소유물로 이해했을 때 문제는 권력 사용을 권력자 개인의 의지 문제로 치환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법과 제도가 만든 권력의 편중과 남용을 오롯이 권력자 개인의 선의와 악의의 차원에서 해석하게 된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고, 그들만의 리그인 거대양당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잘하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회로를 돌리고 있다면 권력이 스며든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는 푸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권력과 관련된 문제라면 어디서든(여러분들이 속한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암묵적이고 미묘한 권력의 효과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곳이 결국 현실을 바꾸기 위해 주목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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