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 또는 그러한 상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목받고 있는 키워드이다. 이 키워드는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요소에 적용되는데, 대중이 가장 중독적으로 과몰입한다고 말할 수 있는 소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는 방송에서 노래, 연기, 춤 따위의 한 분야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뽑기 위해 출연자 간에 경쟁을 붙이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과몰입하게 된 것일까?

수많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그 중 핵심 요소는 ‘내러티브’이다. 참가자들의 내러티브적 면모, 인생사부터 가치관까지 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이야기들은 시청자들을 그들의 입장에 몰입하게 만든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팬의 입장에서 성공을 기원하기도 하고, 탈락에 눈물짓기도 하며 심지어 직접 참여하고 그 참여를 기념으로 삼기도 한다. 이는 전에는 찾을 수 없었던 적극적 수용, 가히 과몰입이라 말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내러티브에 대한 과몰입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정성의 간극에 있다. 시청자들의 참가자들에 대한 열광은 일반인 참가자를 단숨에 공인의 위치에 올려놓고 이는 또한 프로그램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한다. 가장 뛰어난 사람을 뽑기 위한 취지와는 달리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우승을 거머쥐고 주목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수면 위로 오른다. 내러티브적 면모가, 정말 공정성을 해치는 것일까?

‘내러티브적 요소에 입각한 공정성’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러티브적 요소가 공정성이라는 틀 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확장되어왔고, 이러한 자리매김은 시청자들에게 ‘화제성’ 또는 ‘감성팔이’라는 단어를 운운하게 하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본질에 의문을 야기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역사를 들 수 있다. 초기 서바이벌 프로그램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에서는 참가자들의 내러티브적 면모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단순히 참가자들의 소개 또는 참가하게 된 사유 정도만이 공개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소심한 내러티브적 요소는 평가기준까지 영향력을 뻗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K팝스타>, <프로듀스 101>, <미스트롯>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전제를 가진 프로그램들은 참가자들의 내러티브적 요소를 필수적으로 요구했다. 참가자들의 사적인 목표의식과 속사정들은 시청자들에게 유대감과 동질감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열띤 응원은 내러티브적 요소가 승패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했다. 정리하자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양상에 따라 참가자들의 내러티브적 면모가 보다 노출되면서 이는 하나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요소로 정착한 것이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내러티브적 요소라는 존재 자체가 공정성을 해친다’가 아니라 ‘내러티브적 요소가 공정성 안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해야 하느냐’이다. 사실상 이에 대한 염려는 회수할 필요가 있다. 2021년에 방영된 <쇼미더머니 10>에서는 랩퍼 조광일이 우승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최종 결선에 올라온 네 명의 참가자 중에서 가장 내러티브적 요소로 화제에 오른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래퍼 씬스나 쿤타가 가정사나 인생사로 주목받았다. 또한 최종 결선은 현장 관람자 및 생방송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이는 참가자의 내러티브가 강하게 드러나는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도 승패가 온전히 그들의 이야기에만 치중되어 결과를 휘두르는 지경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시청자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음 쓰기도 하지만 결국 결과는 실력을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가적인 요소가 추가될 수 있지만 그것이 중점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현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평가방식을 선정하곤 한다. 심사위원 외에도, 시청자들의 투표, 영상의 조회수나 좋아요수 등으로 최대한 내러티브와 같은 요소가 평가 기준을 독점하지 않도록 다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 예민하면서도 관대하다. 공정성의 위협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다양한 요소를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집어넣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일상이 암묵적이고 지속적인 경쟁으로 영위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개선하고자 했던, 또는 제어하고자 요구하고 싶었던 것들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투영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각자의 사정을 이해받길 바라면서도 우리의 이러한 제안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의 경쟁에도 수용되고 개선되어 언젠가는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충분히 너그러워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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