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속에서 갈등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만약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거짓말로 누명을 씌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자신의 결백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심정이 어떨까? 진위여부는 안중에 없이 그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마녀사냥 삼더라도, 억울한 피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면? 또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가식적으로 꾸민 가짜 삶의 이력들은 어떻게 걸러내야 할까? 타인으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의 언행이 ‘신중하고 정직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괴테의 말처럼 “행실은 각자가 자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의 신중함을 담은 기드 모파상의 단편 <노끈>이 떠오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슈코른 영감은 마을에서 도둑으로 오해를 받는다. 그는 고데르빌 광장을 걷다가 버려진 노끈을 주웠을 뿐인데, 그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말랑댕 영감에 의해 졸지에 올브레크 영감의 지갑을 훔친 도둑으로 내몰린 것이다. 자신이 훔치지 않았음을 밝히고자 마을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러한 불신은 지갑을 주운 마리위스 포멜이 올브레이크 영감에게 주운 지갑을 돌려주며, 자신이 한 일이라고 밝혔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오슈코른 영감은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채 죽고 말았다.

오슈코른 영감을 지갑 도둑으로 몰고 간 말랑댕 영감의 거짓말은 ‘지갑을 줍고 나서 돈 떨어지지 않았나, 진흙 속을 찾은 것까지 안다’는 등의 허위 신고를 할 만큼 치밀하고 섬세했다. 오슈코른 영감이 지갑을 주었다는 증거도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영감이 당한 봉변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은 없다. 이 단편의 줄거리는 언뜻 마녀사냥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평소 행실의 중요성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 말의 중요성 등 말과 행동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품고 있다. 우선 오슈코른 영감은 광장에서 주운 노끈이 말랑댕 영감에 의해 지갑을 주운 것으로 오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지갑을 주웠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마리위스 포멜(농부)을 시켜 되돌려 줬다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끝까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소문만 믿고 그를 비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보통 타인에 대한 추문(醜聞)을 쉽게 떠벌리는 이들의 특징은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측과 소문을 기반으로 타인에 대한 추문을, 자신의 허황된 ‘신념과 추측’을 더해 부풀려 퍼뜨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보다 질투와 시기를 기저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왜 단 한 명도 오슈코른 영감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까? 평소 오슈코른 영감은 얕은꾀로 사람들을 잘 속여 왔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이 품은 생각은 표정과 말, 행동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무심코 보여주는 행동으로 스스로의 이미지는 창조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오슈코른 영감에 대한 불신은 그의 해명이 거세질수록 더 커져만 갔다. 사람들은 자기 신념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자꾸 해명하고 다니는 것은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겠지만, 결국 그들에게 그런 해명은 오히려 추문이 사실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줄 따름이다.

한편 원한을 품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말랑댕 영감은 어떤가? ‘한 가지의 거짓말을 참말로 위장하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의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는 마틴 루터의 말이 있다. 심지어 자신의 상상 속 허구를 사실이라고 믿는 심리적 장애로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도 있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결여된 것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출발하여 거짓으로 다른 사람의 신분을 사칭하고 그 거짓말에서 위안을 느끼며, 심지어 사실과 ‘자신의 거짓말’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말랑댕 영감의 거짓말은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거짓말로 인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거짓말은 치명적인 범죄가 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거짓말 속에 살려는 의지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슈코른 영감은 사건 자체보다 말랑댕 영감의 거짓말에 더 큰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새로운 이유를 덧붙이며 항변을 하고 다닌 소심한 오슈코른 영감이나 “아무리 그래도 자네가 그 일과 무관하다고는 말 못 할 거야”라고 하며 그를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이나 애초에 거짓말을 한 말랑댕 영감 모두가 문제적 인물이다. 근시안적인 사람들은 진실을 쫓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며, 자신이 꿈꾸며 추구해온 환상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저 거짓만을 쫓는다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절망과 고통뿐일 것이다.

이송희(시인, 국문학 박사)
이송희(시인, 국문학 박사)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