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칼의 노래>와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가 지난 10월 12일 우리 대학 인문대 1호관 김남주기념홀에서 ‘나의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어릴 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삶의 경험을 차례로 들며 ‘언어의 허망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언어의 공허함을 깨닫다
김 작가는 3살 때 6·25 전쟁이 터지자 가족들과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 당시 기온은 영하 10도로 몹시 추웠다. “열차 지붕에서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어린아이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져 죽고, 자리다툼을 하다 밀려서 죽고, 터널을 지날 때 천장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부딪혀 죽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열차 객실 내부에는 고관대작들의 피아노, 가구 등이 실려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조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 하며 그래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그러한 나라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조선일보나 부산일보 등 신문을 찾아보고 여러 기사와 문건을 찾아 읽으며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작가는 “이때 내가 느낀 공포감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정치적 언어의 공허함에 대해 절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무책임한 말을 하는 인간의 언어에 대한 불신과 증오감을 느꼈다. 이를 통해 느낀 비극적인 정서는 여러 소설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국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이후 이승만 정부, 4·19 혁명, 박정희 집권 시기를 지나오면서 그는 ‘국가 조직, 인간 집단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의 긍정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빨간 소방차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어디론가 빨리 달려가는 것을 보면 행복한 마음을 가지곤 했다.

그는 “국가의 아름다운 작동을 느낄 수 있었다”며 “국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본인을 “청소년 시절에 형성된 현실 안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허망한 언어를 벗어나
김 작가는 ‘세계의 악’에 대한 경험과 깨달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중학생 시절 그는 복원되지 않은 남한산성에 대해 역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짓밟아버리는 세계의 악을 그때 깨닫고, 끔찍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또한 대학 시절 읽은 <난중일기>와 <안중근 의사의 신문조서>도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김 작가는 “책 속에는 이 세계 악의 적나라한 모습과 악이 작동하는 모습, 그것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며 “이것은 삶의 현실에서 바로 나온 글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 받은 충격을 전했다. 그는 “책을 가지고 뭔가를 보여야겠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경험들은 <칼의 노래>나 <하얼빈>과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는 “오늘날에도 언어의 혼란과 공허함의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삶의 직접성과 구체성으로 소통할 수 있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의 허망한 언어를 벗어나 소통 가능한 언어로 글을 쓸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과제로 삼고 있다”고 덧붙이며 강연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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