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푸코(Michel Paul Foucault)는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나에게 똑같이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지 말라. 자기를 배려할 줄 아는 삶은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미학을 갖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 가운데 의문을 가지고, 추론하며, 이를 결론으로 끝맺거나 이 과정을 재생산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사적인 판단을 도출하는 선에 그칠 수 있지만, 이를 체계 속에 정리한다면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이자 ‘미학’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논증을 통해 틀 안에 정리한 사고만이 독립적인 미학으로 성립될 수 있고, 이는 진정으로 자신을 배려하는 삶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논증의 탄생』의 맥락도 이와 상통한다. 첫 번째 장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논증을 통해 자신만의 미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별적인 창의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날 것과 다름없어서 논증을 거쳐 체계화해야 지성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들어 논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개념을 아주 친밀한 이웃인 것처럼 소개한다. 이는 바로 대화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들 간에 긴밀히 엮어있는 논증들을 제시하곤 조각내어 논증의 성립 조건 또한 설명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글에서 논증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술들을 언급하며 주장, 근거, 반론, 전제와 같이 논증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양식들에 대해 논한다. 특히 논증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이 아닌 방향성이 반대되는 의견들을 수용하며 모순을 찾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진리를 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관용의 자세 또한 진정한 논증을 위한 필수요소이다.

세 번째 장에서 저자는 논증의 시작점, 질문에 대해서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특정 대상에 대해서 한 번쯤 물음표를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추론하는 과정을 마주한다. 이러한 추론의 전개와 의미 또는 원인을 갈구하는 논증에 대해 분류하고 여기에서 마주할 수 있는 논증의 한계에 대해서 말한다. 이는 주관과 이성이 얽혀있는 인간의 사고는 논증의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실수할 수 있다고 권고한다.

네 번째 장에서는 말과 글에서 논증을 확립할 수 있는 부가적인 기술들에 대해 말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주장과 근거라는 재료를 효과적으로 요리하여 목적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들이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글과 논증의 상관관계를 짚어주며 이 두 소재를 엮어내는 구조적인 틀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개인의 사고와 그리고 거기에 내재돼 있는 창의성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드러내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을 아이 다루듯이 달랜다. 아무래도 ‘논증’이라는 숨 막히는 소재가 주인공이기에 그렇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소재에 대한 공포를 축소하기 위해 꽤나 다양한 방식을 통해 독자들의 내용 이해를 돕고 배려한다. 첫째는 목차에 대해서이다. 이 책은 목차가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글의 흐름에 따라 나열한 목록과 논증 요소에 따른 글쓰기 전략 목록이다. 이처럼 독자의 필요에 따라 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은 이 책을 논증에 대한 바이블로 바라보게 하며, 펜을 잡는 모든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느껴진다.

둘째는 모든 내용이 독자의 공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방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처했을 법한 다양한 상황들을 예로 들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이같이 공감을 기반으로 한 작문법의 제시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호응을 이끌어내어 논증과의 일체감을 형성한다. 셋째는 독자의 이해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방법론적 이론들에 대해 도표나 도식화된 그림 자료를 동반하여 글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이차적으로는 이를 총괄적으로 정리하는 시각 자료를 통해 개념화를 완성하는 구조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중요도에 따라 글씨체를 달리하거나 파란색으로 강조해주는 배려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들은 저자가 원하는 바, 즉 ‘자신만의 미학을 논증을 통해 구축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타당성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논증의 탄생』이 강조하는 미학이란 무엇이고, 그리고 미학과 논증의 상관관계는 어떠할까? 사전적 의미로 미학은 자연이나 인생 및 예술 따위에 담긴 미의 본질과 구조를 해명하는 학문을 말한다. 우리는 대개 인생에 대해 고민하면서 여러 사견을 늘어놓지만 이는 굉장히 번잡한 양상을 띤다. 따라서 이 정체되고 혼잡한 사견들을 미학이라고 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어휘가 가진 의미 그대로 우리는 이 사견들의 본질과 구조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체계 안에서 정립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뚜렷이 규명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인생관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학이란 ‘체계를 갖춘 개인의 고유하고 독립적인 사고관’이라고 일컬을 수 있고 이 미학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논증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논증을 표명하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로 글을 제시한다.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글은 씀으로써 깨닫는 것”(46쪽)이다. 따라서 우리는 글을 통해 논증을 경험하며 이는 결국 사견을 미학으로 도출하게 한다. 이처럼 글이 논증과 미학에 있어서 핵심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계에서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결과적 산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종이 위에 나열된 검은 문자들의 조합과 구성만을 따지곤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글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문구와 더불어, 우리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혼란한 사고들을 정리할 수 있고 정체되거나 침체된 사고를 움직이게 또는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글을 쓰는 과정은 굉장히 자의적인 생각들을 일정한 틀 안에 체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와 연단을 통해 사견을 미학으로 도출하는 과정은 점점 축소되고 간편화된다. 논증을 통한 글쓰기의 반복이 사고를 체계화하는 힘을 길러주고 이는 미학에 도달하는 속도를 높인다.

둘째는 각자의 미학이 글로 표현되든 말로 표현되든, 그리고 그 산물들이 어떠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던 우리는 이를 존중하는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그 사견 또한 형태와 양식이 가지각색이며 서로 들어맞는 퍼즐 조각이 될 수도 있지만 꾸준히 대립되는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간극을 통해 오히려 그 이상의 진리를 찾으려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차이는 다양성의 근본이며 다양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는 삶은 결국 우리를 진리로 이끈다. 따라서 우리는 논증을 통해 아주 사적이고 구조적인 미학을 구축할 수 있고, 이를 타인과 나누어가는 삶은 궁극적으로 이성의 완성에 이른다. 이처럼 논증을 거치는 과정, 글을 쓰는 과정 하나하나에 온갖 정신을 쏟고 애써 도출한 결과에 대해 서로 인정하는 태도는 한 개인의 삶 속에서 나침판으로 작용한다. 주체성을 체계화하고 각자의 독창성을 수긍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진정한 배려라고 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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