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이 된 추운 겨울, 자주 눈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졌다. 처음 삶을 마주하듯 원하는 것을 하며 지낼 뿐이었다. 모두가 말하는 올바르고 계획적인 삶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놓치고 조금 어리석게 살면서도 그러한 날들에 만족해하며 잠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하루하루는 원하는 것을 가장한 일들로 채워졌다. 바쁜 삶이었으나 성취 없이 살아가는 게 더 불안함을 주었다.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을 붙잡고 있어 불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명해진 눈물 자국과 다르게 본질은 흐려져 있었다.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을 바빠서 못 읽는 시기엔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껴요.”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에서 한강 작가가 한 말이다. 사람이 희미해지고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이야기에 자신을 떠올렸다. 순간 멍한 느낌이 들며 책에 소홀했는지 되돌아봤다. 이후 존경하는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민음사 문학잡지를 구독하고, 시집을 읽었다. 그러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는 말이 머리와 가슴에 새겨졌다. 시를 되뇌며 지금을 되돌아보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잘 해내기 위해 할 일을 줄이며 곁가지를 쳐냈다. 그럴수록 많은 것이 선명해졌다. 릴케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지금의 모든 것’을 살아 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일기로 오늘을 정리하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순간을 놓치는 것보다, 순간을 잘 마무리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든 뒤를 돌아봤을 때 현재에 충실했던 과거의 나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반점이 아닌 온전한 점 하나를 찍어내며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진 둥근 원을 그려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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