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08년 봄에 전남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이슬기라고 합니다. 2011년부터 10년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정치 현장을 취재하는 외신 독립기자로 활동했습니다. 탐사보도와 심층기획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인도네시아 최대 시사주간 <뗌뽀>(Tempo)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10개국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발굴하고 취재한 뉴스를 국내언론 <한겨레21>과 국제언론 <로이터 통신> 등 국내외 주요 매체에 보도했습니다.

아시아 정치 뉴스의 자세한 전후 사정과 맥락을 현장 취재와 인터뷰, 문헌 조사를 통해 새로 발굴한 사실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헛물을 켠 일도 많았지만 성과라고 기억하고 싶은 취재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960-70년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군사 정부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 긴밀한 한-인니 외교 관계를 쌓아왔는지 사료를 추적, 보도한 특집 기사(2014·Tempo)가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알려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군·경의 민간인 인권침해 현장을 취재, 보도한 기사(2016·한겨레21)입니다. 세 번째는 네팔 10년 내전(1996-2006)의 도화선이 되었던 현장을 방문하고, 전후 이행기 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투쟁 과정을 취재한 연속보도(2015-2016·Nepali Times)입니다. 네 번째는 한국의 해외개발공적자금이 어떻게 인도네시아 군·경의 묵인 하에 인도네시아령 파푸아의 산림과 원시생태계를 파괴하고 선주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가를 다룬 탐사보도(2020·China Dialogue)입니다. 마지막은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일본, 미국 기자들과 함께 중국 선주선박회사가 태평양 참치어업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어선원의 인권을 침해하고 불법조업과 남획한 정황을 1년간 추적 취재하여 보도(2021·The Environmental Reporting Collective)한 것입니다.

10년의 현장 취재 과정에서 전쟁과 분쟁, 군부의 권위주의 통치로 발생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는 아시아 현대사를 보았습니다. 짧은 경험이지만 현대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건 일단 기록을 추적하고 관련 생존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현장 취재활동 10년이 되던 해인 2021년 겨울부터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합류하여 조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5·18과 관련해 군과 경찰의 연행, 구금,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의 광주·전남지역 조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5·18과 관련하여 많은 자료와 기록이 있다고들 합니다. 이미 많은 사실들이 나와 있고,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사실이 자명한데 무슨 진상규명을 더 하냐고 되물어오는 5·18 피해생존자들도 더러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43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와 피해 생존자, 참고인들로부터 새로운 증언과 피해사실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 당사자들이 겪어온 국가폭력의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과 그로 인한 노동 능력 상실, 빈곤의 문제가 2세대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찾아가야 할 현장과 만나야 할 생존자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사활동이 종료되는 2023년 12월까지 발로 뛰어보겠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경험을 <전대신문>과 공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슬기(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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