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기 위해 마트 문을 열면 비장애인들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유도블록도, 점자 손잡이도, 음성유도장치도 없다. 사람 두 명도 지나가기 버거운 통로는 휠체어의 길이 아니다. 상품들이 빽빽하게 놓인 가판대에 잘못 부딪히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고객들이 무신경하게 밀고 다니는 카트는 움직이는 장애물이다. 그야말로 장애인들은 ‘장 보러 갈 결심’이 필요하다.

기업은 장애인을 ‘소비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 배려와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겨진다면 충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일들이 자꾸만 정당화될 것이다. “도와주면 되는 거 아냐?”라는 말로 장애인의 불평등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향한 제한적 인식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고,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기준과 법칙을 재정립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기업들의 미숙한 인식은 장애인의 권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기업은 비용 문제를 걸고넘어진다. 점자 표기를 기입하기 위해서는 제품 생산 공정에 몇 단계를 더 추가해야 하고, 캔 음료의 경우 병 입구가 좁아 점자 표기를 넣을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매일유업은 매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희귀병을 앓는 신생아를 위한 특수 분유를 제작한다. 사회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마땅한 책임을 갖는다. 이익 창출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은 기본권을 무시하는 얄팍한 변명이다.

기업은 도움을 주는 것에 끝나지 않고 실제로 고객이 매장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상품 디자인부터 매장 환경 조성까지 대폭 활용해야 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꼼꼼히 점검하고, 장애인의 검수를 받아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 매장 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장애 고객 대응 교육도 시행되어야 한다. 직원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고객 대응은 장애 유형에 맞는 실질적 도움으로 이어질 수 없다. 매장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고 보조하는 인력을 현장에 투입해 환경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침내, 차별과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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