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기화에 상승한 농촌 인건비…“계절근로자 고용도 포기”
작물 종류와 양 줄이기도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전북 고창군 해리면의 농민들은 질퍽거리는 땅 덕에 오랜만에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하필 이런 날 취재를 온 기자는 뙤약볕 아래 밭에서 함께 일할 참으로 취재 날을 잡기를 한참 잘못한 듯 보였다.

끝이 안 보일 만큼 길게 쭉 이어진 복분자밭에는 아직 다 따지 못한 복분자가 남아 있었다. 복분자밭의 주인인 김미화 씨(51)는 복분자뿐 아니라 벼, 수박, 고추, 땅콩, 단호박 등 여러 작물을 수확하는 복합영농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농민 중 가장 젊은 농민인 김 씨는 오늘처럼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요즘은 매일 같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복분자는 어제 비 오기 전 오전에 수확을 했어요. 다 끝낸 건 아니지만 더는 힘들어서 지금은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해요.”

호박의 상태를 보고 있는 농민 최희영 씨.
호박의 상태를 보고 있는 농민 최희영 씨.

김 씨는 농촌에 일할 인력이 부족한 탓에 한 번에 수확하기보다 여러 번 나눠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국가 간 이동 제한에 따라 국내 외국인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원래도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일손 부족을 겪고 있던 농촌에서는 더 깊은 한숨이 나온다. 김 씨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19 전에는 여자 기준 하루에 10만 원 선이었던 인건비가 지금은 14~15만 원까지 올랐다. 김 씨의 남편 최희영 씨(57)는 “할 일의 양은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외국 인부들이 많이 못 들어와서 인부 값은 올라간다”라며 “식구와 지인끼리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고창군은 농촌 인력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하여 지난 2월에는 네팔 마차푸차레 지자체와, 지난달 20일에는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주와 계절근로자 수급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이 제도는 외국인 고용이 어려운 농·어업 분야에 최대 5개월간 계절근로자 고용을 허용하는 제도로 파종기, 수확기 등 계절적으로 단기간 발생하는 농촌의 인력난 해소가 목표다. 고창은 1차로 네팔에서 97명이 입국했으며 지난달 9일 2차로 47명이 입국하여 총 140여 명의 네팔 계절근로자가 고창에서 일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계절근로자의 손을 빌리고 싶어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계절근로자가 체류하는 계약 기간 동안 농가에서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껏 하루 일하고 하루 일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일손을 충당해온 김 씨네는 계절근로자에게 마련해 줄 마땅한 숙소가 없다. 새로 숙소를 마련하기에도 농업 소득만으론 벅찬 상황이다. 김 씨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라며 계절근로자 고용을 포기했다.

아직 다 수확하지 않은 복분자 하나를 지난달 24일 기자가 집어보고 있다.
아직 다 수확하지 않은 복분자 하나를 지난달 24일 기자가 집어보고 있다.

복분자같이 끊어서 일을 할 수 있는 밭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밭도 있다. 트랙터와 지게차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니 그 예시인 고추밭이 보였다. 김 씨는 “고추 딸 때는 수확하고 바로 농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끊어서 작업할 수 없어 무조건 인부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밭은 “갈고 로타리 치는 것(밭이나 논을 고르게 정리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다 손으로 하고 있다”며 “작물 심어놓고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건 기계로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사짓는 작물을 더 쉬운 것으로 바꾸거나 양을 줄이는 추세다. 김 씨네는 작년까진 양배추를 길렀던 밭에 올해는 소 여물용 옥수수를 재배했다.

“양배추의 수입이 줄어들다 보니 양배추 값은 올랐어요. 그런데 인건비 드리고 거기에 비료부터 비닐값까지 농자재값이 싹 올라 굳이 양배추를 키울 필요 없이 소 풀로 가는 거죠. 소 풀은 기계로 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에 비해 농산물의 가격은 대체로 올랐지만 재료비와 인건비 등 농사에 드는 비용도 같이 올라 농민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많아진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농사짓는 양이 차이가 많이 날 경우 품앗이도 어렵다. 그렇다고 노동자를 구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 씨는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만 하자는 추세”라며 휴식을 취하러 갔다.

지난달 24일, 질척거리는 땅과 흐린 날씨에 고추밭에서 일하는 농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질척거리는 땅과 흐린 날씨에 고추밭에서 일하는 농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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