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이다. 기사를 쓰기 위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 광주시청과 지역 관련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들락날락하고 있던 때다. 유독 많이 보이는 글이 ‘광주에도 코스트코, 이케아, 스타필드, 프리미엄아울렛이 들어설 수 있게 해달라’였다. 대부분 젊은 층이 올린 글이었다.

“이런 게 뭐라고 청원까지….” 나 또한 가볍게 지나칠 뻔했던 ‘사소한’ 바람들이 사실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오히려 이 지역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박탈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당시 첫 기사를 시작으로 지난 1년간의 투쟁(?)에서 알아가야 했던 감정이었다. 

우리 지역 청년들이, 아마도 전남대 후배들도 포함해 함께 던진 ‘왜 광주만 안되지?’라는 의문은 ‘스노우볼’이 돼 올 초 대통령선거의 태풍이 됐다. 그야말로 ‘복합쇼핑몰 유치’ 논란이 지역의 모든 이슈를 잡아 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역 언론은 물론 중앙언론사, 포털을 뒤덮으며 갑론을박으로 치달았다. 

‘그딴 게 뭐라고 그 난리를….’ 기사를 쓰면서 수없이 들었던 지역 어른들의 혀 차는 소리는 고스란히 대선 때 지역 청년들에게 반복됐다. ‘그런 거 없어도 잘만 산다’는 모 중년 정치인의 말은 지역 청년들을 분노를 넘어 허탈케 했다.

“복합쇼핑몰 없는 게 광주정신입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광주에 유세하러 왔을 때 전남대 재학생이 그에게 던진 물음이다. 아니, 그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그건 이재명에게만 향한 게 아닌, 광주의 어른들과 그 스스로조차 ‘광주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을 향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지역 청년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 복합쇼핑몰 유치가 아닐 것이다. 지역 청년들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조차 없이, 자신들만의 낭만에 빠져 사는 이들을 향한 분노일 것이다. 

이 지역에 태어남으로써, 이 지역에 살아가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청년들의 기회의 부족, 더 높은 수준의 비용, 경험의 격차와 이로 인해 느끼는 좌절에 대해 관심 ‘1도 없는’, 중앙 뉴스만 들여다보고 있는 ‘정치 과잉의 도시’에 대한 회의일 것이다.

지역 청년들은 저성장·양극화 시대를 맞은 청년으로서, 자원의 수도권 쏠림에 황폐해져 가는 지방에 사는 청년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더해 타지방 권역 대비 낮은 산업·상업·문화 인프라 환경으로 기회와 경험의 부족을 떠안고 있다. 

2020년 광주·전남에서 한 해 태어난 출생아 수는 1만7000명, 그 해 인구 순유출은 1만6000명으로 대부분 20~30대 청년으로 추산된다. 그 해 태어난 만큼의 청년들이 ‘탈지역’하는 셈이다. 떠난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비용을 감내해야 하고, 남은 이들은 더 많은 박탈감을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복합쇼핑몰 논란이 보여준 것은 남은 이들, 이 지역을 살아가는 이들의 분노다. ‘탈광주’하지 않고 낙후된 지역을 살아가는 대가가 경험의 격차로 되돌아 온 것에 대한 분노다. 지역 청년들의 바람따위는 ‘철부지’ 정도로 치부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다. 

무엇보다 수도권 집중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핑계로 지역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하지도 않는 것에 대한 분노다. 자신들은 주말이면 담양으로, 목포로, 여수로 차 타고 놀러다닐 동안 갈 때가 없어 ‘노잼 광주’라고 자조 섞인 불만을 내뱉는 청년들에게 호통치는 어른들의 위선을 향한 분노다.

그래서 지역의 청년들은 조금은 화내도 된다. ‘기회의 총량’이 부족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었으면서도 여전히 남탓만 하는 지역 어른들에게. 이런 환경이라도 지역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의 질’에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자녀는 수도권으로, 해외로 대학보내며 ‘지역 대학교가 어쩌고’ 하는 이들에게. 

이삼섭 <무등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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