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깎는데
미끌리고 미끌리고 미끄러진다
칼 하나가 벼랑을 타는 것이지
아님 내 손이 미끄럼틀을 타는 것 일수도
이럴 때 손 하나 붙어온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는다
누룽지로 대충 때우는 밥
고소하기는 하나 밍밍한 맛
바로 갓 무친 오이무침,
             진미 채 볶음이 간절히 필요하다
뚝딱 만들어내던 손 하나

시커먼 후드티를 빨았는데
이상한 먼지투성이들 다닥다닥 묻어나
빨았다고 할 수 없는 옷
아차! 뒤집어 빨라고 그랬었지
까만 옷을 온전히 까맣게
흰옷을 흰옷답게
그 손 하나 달라 붙어온다

학교를 갔다 오니
이른 수업으로 급하게 나가
긴 머리카락들 원룸 바닥에서
검은 지렁이마냥 꿈틀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달라붙는 손 그 손이면
꿈틀거리기 전에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텐데

이십 년 동안
매끈한 사과 수고로움 없이 먹었는데
밥과 반찬
한 상 잘 받아먹었는데
위의 옷도 바지도
주름살 없이 반듯하게, 깨끗하게
잘 입었는데
기어가는 검은 머리카락들
기어가는 줄도 모르게 치워진
방에서 잘도 지냈는데

홀로 살아보니
서럽게도 자꾸
자꾸만 달라 붙어옵니다
그 손이

어깨에 달라붙는 손 하나 그리운
달 채워진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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