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해서 중국에 7년여 동안 머물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에 온 전다빈 양 (중문 1)은 "동아리나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영락없는 새내기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때문에 같은 05학번 동기들로부터 이모라는 말을 듣는다"며 웃음 지는 그는 "그러나 나이는 어리지만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 가슴 뭉클뭉클 할 때가 많습니다”

 

탈북해서 중국에 7년여 동안 머물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에 온 전다빈 양(중문 1)은 “동아리나 세미나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영락없는 새내기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 때문에 같은 05학번 동기들로부터 ‘이모’라는 말을 듣는다”며 웃음 짓는 그는 “그러나 나이는 어리지만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됐으면 한다”며 “한국사회와 대학생활에 대해 배우고 싶은 게 많다”고 전했다.

 

전 양은 대학생활에 대해 “레포트를 하기 위해 밤을 꼴딱 샌 적이 몇 번 있다”고 소개하면서 “레포트 점수를 잘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 보다 무엇인가 해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대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아 앞으로는 중국어가 영어 못지않게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것이 ‘중문과를 선택한 이유”라고 전했다. 그는 또 “중국 언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7년 동안 머물면서 수모를 많이 당했다”며 “그런 만큼 내 자신이 제대로 배워 중국에 당당하게 나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다빈 양에게는 광주와 우리대학을 오게 된 데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에서 크게 도움을 준 사람이 광주 출신인데다, 우리대학 교수님과 잘 아는 사이였던 것. “배워서 손해 볼 것 없으니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우선 공부부터 하라는 조언에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도움을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고마워 가슴 뭉클해질 때가 많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전 양은 북에서 각 구역마다 1개씩 있는 학생선인회관에서 오후마다 화술학과 방송을 주전공하고 국문학은 전교국어어문학책임자를 할 정도의 베테랑이다. 그는 특히 “학생선인회관에서 방송을 공부하면서 지방 아나운서로 활동했다”며 “어릴 적부터 꿈인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남들이 한 발짝 뛸 때 열 발자국 뛸 것이라고.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에서 여러모로 지원을 받으면서 같은 민족이라는 것,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조그만 구석에서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지원 기자 jajen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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