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지난 2일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임종 전에 남긴 말이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선배에게서 ‘나, 여러분, 행복’이라는 일상적인 세 단어와 몇 개의 조사가 더해지고, 단지 ‘행복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하는 이 두 문장이 ‘참 감동적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 선배는 “나는 행복한가”라고 반문해 보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교황이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알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했구나, 생각하면서 별 것 아닌 것이라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이내 드는 생각이,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가 되뇌어졌다.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것임에도, 이는 우리가 그토록 갖고자 하는 돈, 부귀영화, 명예 등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전적 의미로 ‘삶의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 상태’라고 한다. 덧붙여 사전에서는 ‘철인이나 위인이 아니라도 가장 가까운 생활에서 우리는 행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돈의 많고 적음, 명예의 있고 없음 등과 관계없이 가장 가까운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행복’이라고 하니 파랑새라는 동화도 한번쯤은 생각날 법하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가장 가까운 생활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지난달 31일 우리대학 총학생회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강제 연행됐다. 이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고발사건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다른 쟁점법안과 함께 4월 임시국회에서 더욱 뜨거운 쟁점사안으로 다뤄질 이 시점에서, 총학생회장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연행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교황이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남긴 이 한마디가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고 자꾸만 되묻게 되는 건 어떠한 이유에설까. 우리는 사회라는 나와 가까운 곳에서 아직도 행복을 발견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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