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서로 흩어져 사는 가족끼리 일일이 안부도 못 묻고 지내는 수가 많다. 그럴 때 누군가 나서서 서로 안부를 전해주거나 더 나아가 흩어진 가족을 서로 합칠 방안을 강구해서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강정구 교수가 쓴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다. 여기에 씌어진 글들이 옳으냐 틀리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지금은 옳든 그르든 자꾸 그런 문제를 논의해야 올바른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정구 교수의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은 아주 필요한 시기에 나왔다. 남북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이 때 지금 외부에서 한반도를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아 넣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중대한 시련을 앞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부터 민족의 생명권이란 단어를 맨 앞에 내걸었던 것 같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통일은 우리 민족이 번영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고 그래서 민족의 생존권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이었는데 지금은 그 보다 더 절박한 민족의 생명권에 관한 문제로 제기하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는 분단과 통일의 변증법이란 제목으로 그동안 우리 민족이 걸어 온 통일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제2부는 분단과 민족의 생명권이란 제목 아래 우리 민족의 분단이 이제는 우리 민족의 생명자체를 위협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을 중심으로 글을 모았다. 제3부는 민족통일의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의 남북 정부의 통일방안과 정책에 관한 분석을 모았다.
내가 1부에서 새삼스럽게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설령 북한이 남한에 흡수 통일된다 하더라도 미국은 남북이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 내에 미군이 따로 주둔하여 친미적인 북한 단독의 정부를 내세워 남한정부와 비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든다는 미국의 아주 야무진 계획에 관한 것이다.
제2부에서는 내가 하나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 있는데 2003년에 한반도에 어째서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몇 개월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한반도에는 전쟁이 못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전쟁의 대가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전쟁의 대가야말로 남북한이 같이 치르겠지만 실제 전쟁은 남북이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미국의 본토를 공격하지는 못한다고 믿기에 미국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전자오락기로 전쟁게임 하듯이 생각한다. 1994년에 실제로 미국정부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전쟁촉발 직전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제3부에서 흥미를 느낀 분석은 지금 우리 민족내부에는 통일을 둘러싸고 온갖 부류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운동을 절대로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세력이 있고, 통일운동을 구실 삼아 한 몫 챙기려는 부류들, 비즈니스 차원의 남북경제교류 추진을 통일운동으로 파악하는 사람들,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많지만 다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통일을 가로막기 위해서는 남북한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사람들만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류가 지금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조직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안전과 기본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반국가적 범죄자들이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빨리 사법처리 해야 옳다.
어떤 것이 통일이냐?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고, 생각과 감정을 교환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래야 우리 생각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고 우리 경제가 뻗어나갈 수 있다. 통일한국의 정치경제체제의 모습, 통일한국의 국가원수는 누가 통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가, 누가 우리 미래와 인류의 장래에 합당한 철학적 해답을 내놓는가에 따라 절로 정해질 것이다. 걱정 마시라. 세상은 지금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