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은 필연적인 우연의 일치를 ‘의미 있는 일치’ 또는 ‘동시성의 원리’라고 명명했다. 가령 파리는 ‘빛의 도시’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에도 빛고을이 있음이 어찌 우연의 일치이기만 하리오? 전혀 아님은 혁명사 연구의 권위자인 카치아피카스에 따르면 완전한 공동체를 이룬 혁명으로는 ‘파리 코뮨’과 ‘5·18 대동 광주’가 있을 뿐인 까닭이기도 하다.

파리는 서양의 문화수도이고 프랑스 요리는 서양요리를 대표한다. 파리장(파리 시민)만큼 예술을 사랑하는 멋쟁이들이 서양인 가운데 그 누구리오? 동양이라면 동양요리를 대표하느니 중국요리이고 중국문화는 동양문화의 간판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으니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요즘이라면 동양문화를 사실상 대표하느니 한국문화 아니랴? 그 덕분에 한국요리가 동양 요리의 얼굴 역할을 할 날도 멀지 않았음에랴! 음식은 가장 원초적인 예술 양식이다. 그 중요성에 대해 민츠는 『자유의 맛 음식의 맛』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생의 궁극적 의미는 음식 문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구현된다.”

‘意味’는 ‘뜻과 맛’이라는 의미다. 뜻 없는 사물은 맛 없는 음식과 무엇이 다르겠는지? 맛에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일수록 뜻 있는 삶을 살 개연성도 높다고 하겠다. 미래학자들은 장래 최고의 직업으로 ‘음식 품평가’를 꼽는 판국이 아니던가 말이다. ‘먹방’이나 ‘쿡방’을 제외한다면 무슨 꼭지로 방송을 다 채울 수 있겠는지?

대한민국에서 미향(味鄕)은 단연코 호남이다. 호남은 김치와 젓갈의 종류가 각각 백가지도 넘을 만큼 발효음식의 천국이다. 그 가운데서도 백미편은 홍어다. 남도의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그건 이미 잔칫상이 아니라면 납득될까? 홍어가 호남음식에서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인 지위를 말이다. 홍어의 음식궁합에 필수적인 음식이 탁주와 돼지고기와 김치다. 탁주와 함께는 홍탁이라고 하며 돼지고기 김치와는 삼합(三合)으로 불린다. 일베가 5·18 희생자의 관을 홍어택배상자라고 모욕했음은 그 얼마쯤 언어도단의 망발이었던가? 음식에 이념을 투사해서 한 지역을 모독함이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인 패륜임에랴!

호남에서는 발효음식의 깊은 감칠맛을 일러 ‘개미, 시김새, 그늘이 있는 맛’이라고 한다. 이는 삭힘이 있는 소리꾼의 미적 운치를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호남인은 소리조차도 발효된다고 믿었으니 얼마쯤 기발한 상상력의 연금술 아니 발효학이겠는지? 하긴 선조들은 사랑도 발효된다고 믿었기는 하다. ‘사랑하다’의 옛말이 ‘괴다’ 아니었던가?

좌우지간 개미나 시김새라는 용어에서 깨달을 수 있는 바는 맛=멋의 등식이다. 국어학자들에 따르면 멋의 어원은 맛이라면 자동으로 미향은 예향(藝鄕)임이 증명된 셈이다. 맛없는 음식은 멋없는 행동과 무엇이 다르리오?

“미래는 발효의 시대다.”

아! 앨빈 토플러는 어떻게 예견할 수 있었던 걸까? 미래는 호남의 시대일 줄을 말이다. 호남의 시대를 화려한 취주악단의 합주와 함께 개막하자면 우리의 사명감 자각은 얼마쯤 도저해야 옳은 일이겠는지? 그 사명의식을 한 세기 전에 깨달았던 선각자가 증산교 창시자인 강증산(姜 甑山)이었다.

萬國活計 南朝鮮(만국활계 남조선)
淸風明月 金山寺(청풍명월 금산사)
“모든 나라가 살아날 계책은 남조선에 있으니
인심의 맑기가 청풍명월 같은 금산사로다.”

증산의 위대성은 민족 존망의 위태로운 시기에 세계를 구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은 데 있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신들을 불러 대통일신단(大統一神團)을 구성해 주재코자 하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민족적 자부심인가? 뿐만이 아니다. 그는 폭력적인 가부장질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본주의가 이 땅에 상륙하기도 전에 몰락의 운명을 내다보았다. 대안으로 모성(母性) 원리의 세상을 꿈꾸면서 모악산(母岳山)으로 천하의 어머니산을 삼음과 동시에 세상의 중심지임을 천명한 것이었다. 서양의 생태여성주의보다 백년 앞선 선각이었다면 역시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지? 우리 민족사에서 증산만큼 원대한 전망을 열어 보여준 이가 과연 그 누구였던가 말이다.

호남이 예향이면서 문향(文鄕)이기도 함은 시가(詩歌)의 독보적인 발달에서 자명한 바 있다. 시초만 하더라도 송강(松江)과 고산(孤山)이 쌍벽 같은 존재임을 두말해 무엇하리오? 우리나라 풍류 문학은 정극인(丁克仁)을 대표로 하는 태산(泰山) 풍류와 송강을 중심으로 하는 계산(溪山) 풍류로 대별된다는 사실이다. 음악에서도 호남이 독보적임은 세계 유일의 일인(一人) 창극(唱劇)인 판소리 덕분이다. 산조(散調)만 하더라도 진도의 무속 음악인 시나위가 그 원류 아니었던가?

진도가 예향 중의 예향임은 소리의 본향(本鄕)이자 남종화(南宗畵)의 고향이라는 사실에 있다. 소치(小痴)에서 미산(米山)을 거쳐 남농(南農)과 의재(毅齋)에 이르기까지 문하에서 5백 명이 넘는 화가가 배출되었다면 얼마쯤 대단한 예맥(藝脈)일지?

멋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멋에 해당하는 외래어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는 오직 배달겨레만이 멋의 관념을 개념화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역시 얼마나 획기적인 일이겠는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의 멋은 풍류의 멋이다. 실로 호남이 예향임도 풍류의 본고장인 덕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싶다.

풍류 정신은 ‘멋대로’라는 말이 웅변으로 증언해주듯 자유 정신이다. 풍류도는 세계 최고의 자연동화 문화인데 자유, 자재, 자약(自若), 자여(自如)는 자연의 미덕을 표상하는 용어가 아니었던가? 당연한 귀결로 호남인은 부자유와 부자연을 극도로 꺼리며 불의를 참지 못하고 치열히 저항해왔다. 임진왜란과 구한말 가장 많은 의병장을 배출했을 만큼 호남은 의향(義鄕)이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동학혁명과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에 이르기까지 호남의 근현대사는 저항의 역사였음을 두말해 무엇하리오?

결국 미향과 예향과 문향과 의향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은 풍류도임이 증명된 셈이다. 빛고을이 문화수도로 선정된 필연성도 여기 있을지니 세계적인 문화수도로 육성해 마땅하지 않겠는가? 풍류는 ‘유전된 풍습’이라는 뜻이다. 자연을 애호하는 관습이 하나의 생활철학과 종교로 규범화되었음을 뜻한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일러서 풍류도라고 한다. 유불선을 통합하고 뭇 중생과 접하여 교화한다.”

불행히도 풍류도에 관한 기록은 최치원이 난랑(鸞郎)이라는 화랑의 비석에 새긴 이 글뿐이다. 선조들은 관습헌법 같았던 풍류도의 기록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싶다. 이 땅의 마지막 풍류도인이라 할 분이 소나무 시인으로 유명했던 고 박희진 시인이었다. 우리나라 소나무만큼 멋이 철철 넘쳐흐르는 풍류의 화신도 달리 없거니와 오늘날 풍류도는 존재 자체가 희미해졌음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박희진 시인으로부터 “풍류도에 관한 책은 달랑 한 권뿐이다”는 말을 듣고 「수필과 비평」이란 잡지에 ‘풍류도의 축복’을 연재했었다. 그 글을 재미교포 수필가인 변완수 선생이 감명 깊게 읽었다며 미국 교포들의 잡지인 <코리아 모니터>에 풍류 이야기 연재를 요청해왔다. 그 덕분에 ‘한국의 풍류문학’을 70회 넘게 연재했었다. 나머지는 <한글+한자문화>라는 잡지에 연재했기도 하다.

일찍이 대원군은 풍전세류(風前細柳)라는 사자성어로 호남이 풍류의 고장임을 공증했다. 내 풍전세류의 고장에서 태어나 풍류 이야기를 썼음보다 회심의 글쓰기가 무엇이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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