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을 막론하고 운동경기가 종료되면 참가했던 선수들은 상대편 선수, 감독, 그리고 심판과 인사를 나눈다. 경기에 져서 화가 잔뜩 난 선수들이 굳은 얼굴로 인사 없이 경기장을 떠나는 경우에는 “경기도 지고 매너에서도 졌다”는 제목의 기사가 어김없이 올라온다. 속내와는 상관없는 형식뿐인 제스처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마저도 취하지 않는 선수의 인성은 과연 어떤 수준인가 하는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을 접한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마지막 인상이 그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교류 횟수가 많을수록 그가 다양한 상황에서 보이는 반응, 인격의 변화 양상 등을 지켜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를 편하게 느낄수록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지막 인상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누군가의 진짜 모습일지 모르겠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뒤에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크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눈앞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유한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겸손히 행하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보여줄 마지막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말이기도 하다.

대선이 끝났다. 전례 없는 초박빙의 대결이었기에 결과가 나온 후 한쪽은 안도의 한숨을, 다른 한쪽은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3월 8일 선거전 마지막 유세에서 했던 거대 양당 후보들의 발언과 대통령 당선인 확정 후 보여준 태도가 머릿속에 맴돈다. 특히 마지막 유세에서 상대 후보와 그 지지자들에게 고생 많으셨다는 위로를 건네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흔쾌히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넘어 합심하여 미래로 나가자고 말했던 여당 후보는, 자신의 말대로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당선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당선인이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누가 당선되든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항간의 우려를 일소시키는 장면이었다. 정치인으로서 그가 갈 길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20대 대선을 마무리하는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품격 있고 아름다웠다.

운동경기와 선거가 아니더라도, 나는 어떤 뒷모습을 남기고 있는지 혹은 남겨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잊지 못할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고 수치스러울 정도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간에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마지막 인상들이 다른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내 삶의 중요한 이정표들이 된다는 점이다.

새 학기, 새 학년이 시작된 3월, 내 삶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고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위해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본다면 청춘의 시간들이 더욱 충만하고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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