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바로 다음 날, 광주NGO지원센터 시민마루에서는 “제2차 광주민주시민교육 포럼”이 열렸다. 시의원을 비롯하여 인권 활동가, 교육기관 관계자 등 20명 남짓 모인 자리에서 광주만의 민주시민교육 모델을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참여한 누군가는 이렇게 발언을 시작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바른 생각’을 가지고 투표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그 발언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라는 가치는 ‘옳음’과 직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공적 영역에서 ‘바르지 않은 사람’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 스스로가 정책을 비교하여 내린 판단과 특정한 후보를 반대하는 이유로 내린 판단이 우연히 일치하여 결집될 수는 있다. 또한 자신의 판단을 근거로 다른 유권자들을 설득하여 선거운동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생각으로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틀린 사람’은 아니다. 민주시민은 다른 의견도 존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절차적 정의’에 의한 결과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시민이 가져야 할 지식이나 태도로서의 민주시민교육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교육을 하면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까? 인문학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름대로 여기에 대한 답을 고민해 보았다. 우선 민주시민은 공공(公共)에 대한 의식이 깨어 있고, 의사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첫째, 다양한 상황에서 ‘실천적 판단’을 상상해 보고 ‘공공성’을 함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정신’은 계몽이 아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숙고’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공성’이 완성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당면한 시대에 맞는 공공성은 다양한 가치들의 경합에서 민주적으로 채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치가 지나치게 특수한 이해관계에 닿아 있다면 ‘보편적 감수성’으로 공공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훈련을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공론장의 테이블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말하고 듣기를 통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민주시민은 능동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를 뒷받침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주장에는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으며 타인의 주장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능력은 평소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쓰는 표현하기 연습과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토론의 진행자 역할을 맡아보면서 다른 의견들을 중재하는 연습도 병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셋째,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감정을 열등한 것으로서 억제하고 절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면, 근래에 감정은 충분히 근거 있는 것으로서 존중되고 오히려 잘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가 지지를 얻고 있다. 감정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감정라벨링’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감정에 이름 붙이고 그 성격을 이해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같은 노력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도 용이하며, 그 감정이 발생한 원인을 돌아보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가이드가 될 수 있다.

민주시민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또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제 20대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났다. 자신이 어떤 후보를 지지했는가에 관계없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구체적인 사안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소라(전남대 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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