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학마다 쓰는 계획표가 싫었다. 지켜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적는 7시 기상, 세면, 아침 식사. 엄마 손에 이끌려 그린 24시간짜리 시계는 단 하루도 온전히 따라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항상 ‘계획을 세워 시간을 아낄 것’을 강요받았다. 당시에는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옳은 줄로만 알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공부를 하려면 계획표가 필요했고, 공부 분량과 대회 준비 기한을 플래너에 적었다. 이를 반복하며 점점 효율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여전히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계획만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이외에도 ‘정답이 아닌 것’은 많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인간관계가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유연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실을 파헤쳐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정답이 아니기에 ‘틀렸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단지 ‘다른’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나를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이 만든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는다.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자신에게 더 맞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의 방법은 참고가 될지언정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자만할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

대학생이 된 지금, 여전히 플래너를 쓰고 있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전혀 없으며,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계획을 세운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그저 자신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한 여행에서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고, 아무런 준비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가슴 깊이 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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