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하루 코로나19 확진자의 수가 1만명을 넘긴 요즘. 어김없이 <전대신문>에도 코로나19 확진의 바람이 불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격리 조치를 하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타인을 감염시켰을 수 있다는 두려움
보건소에서 연락이 온건 ‘pcr 양성 확인 문자’를 확인한 지 6시간 뒤였다. 간단한 역학조사 후, 격리시설로 이동했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워졌다. 이제 일주일간 직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을 통제받는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감정이 올라왔다.

격리시설에서는 나의 의지라곤 없는 삶을 살았다. 정해진 시간에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하루에 두 번 체온과 맥박을 측정해 보고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직원이 증상을 듣고 약을 전달해주지만, 그것마저도 정해진 시간에 문 앞으로 놓아줘 차갑게 느껴졌다. 책상에 달린 ‘긴급’이라고 적힌 버튼만이 직원들의 다급한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켰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지인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연락하여 검사를 권하고, 가벼운 증상이 보이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7일의 격리기간이 지나 시설을 나올 수 있었지만, pcr검사는 받을 수 없었다. 전파력이 없는 비활성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양성이 나올 수 있으니, 한 달간은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완치됐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 채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미확인완치자’가 되었다.

장정환 기자 jjjunghh@naver.com

엎친 데 덮친 격, 코로나19 확진에 마감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건 1분 1초가 바삐 돌아가는 지난 신문 마감 기간이었다. 여러 기획을 취재하며,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쳤다. 신문사에서 함께했던 기자들과 더불어 인터뷰이까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현실이었다.

확진 판정으로 인해 재택 치료를 진행하며 집에서도 하나의 민폐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매끼니마다 가족들이 일회용품으로 된 식기로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화장실을 갈 때는 비닐장갑을 착용한 뒤 소독제를 뿌려야만 움직임이 가능했다. 가족 구성원의 확진을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지만, 이보다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 순간은 없었던 듯하다.

물론, 비대면 마감을 진행하며 신문 제작의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제작소도 가지 못했다. 교열을 함께할 수 없었기에 그저 핸드폰만을 붙잡고 미안한 마음으로 진행 상황을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어떤 이는 일종의 감기와도 같다고 말하지만, 겪어본 사람이 알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체력적인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이선정 기자 sj011208@naver.com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